어느 요리 블로거의 파란만장한 삶
요르단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예루살렘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긴장되는 마음 반, 호기심드는 마음 반을 안고 가는 중에 여러번 검문과 심사를 거치며 진짜 갈 수는 있는 것인지 불안감이 커졌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사람과 왜 예루살렘에 가는지 자연스레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애초에 왜 요르단에 있었던 것인지도 말하게 되었다. 내 옆에 앉았던 사람은 슬로바키아 사람인데 요르단에서 UN 봉사자로 2년을 일한 뒤 슬로바키아로 돌아가는 길이고, 텔 아비브에서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 대화가 이어지며 왜 UN 봉사자로 일하려는 마음을 먹었는지, 돌아가면 무엇을 할지도 물었다. 당연히 UN이랑 관련된 다른 것을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잠시 고향에 갔다가 다시 프랑스에서 베이비시팅을 할 것이라 그랬다.
"나는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고 취미인 요리를 더 잘하고 싶어.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 두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게 프랑스에서 베이비시팅이라고 생각해."
그 당시의 나는 중동 문화나 아랍어를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요르단에 갔던 것 마저 시간 낭비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컸다. 그 말에 대해 영감님이 답하기를,
"나랑 석사를 같이 끝낸 친구들은 이미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어. 그 친구들과 비교하면 내가 하는 건 시간낭비 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잘못된 선택이라 비난할 수도 있어. 나이가 들고 더 높은 학력이나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면 계속 더 높은 기준이 생기고 그걸 포기하기란 더 어려워. 결정 하나의 무게가 커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더 늦게 전에 진짜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하려고."
참 멋진 말이었다. 예루살렘의 복잡한 골목 귀퉁이 허름한 커피숍에서 이런 멋진말을 했던 영감님은 베이비시터를 하면서 요리블로그를 운영했고 1년쯤 전에는 특별한 향신료(Special Spices)라는 테마로 세달간 인도 항신료 탐험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적기도 했다.
지금 나는 누가봐도 좋은 회사 정규직 자리를 그만두고 국제기구에서 계약직으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려는 기로에 서있다. 내가 국제기구에서의 경험을 오랫동안 꿈꿔왔고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서도 다시 불확실함에 뛰어드는 것에서 오는 걱정은 단순히 지울 수가 없다. 지금 시점에 안정적 일자리를 쉽게 포기한다는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 그뒤엔 무엇을 할거냐, 배가 부른 소리인 것 같다는 평가. 이런 말들는 때론 마음을 후벼파기도 한다. 그런 평가가 상처가 될 때 그리고 내 안의 불안이 슬며시 고개를 들 때 이 영감님을 떠올려보려 한다.
돈, 안정성, 가정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간. 이런 고민 포인트들은 계속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걸 하나하나 생각하고 재다보면 원하는게 많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하는게 없는, 혹은 원하는게 있어도 차마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릴 것 같다. 아직은 해보지 않은 것에서 오는 두려움에 스스로 포기해도 된다고 정당화하고 싶지 않다. 취업 준비를 할 때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 혼란이 준비보다 더 어려웠는데 그런 점에서는 해보고 싶은게 하나라도 생긴게 얼마나 큰 행운일까 싶다. 그런 행운 앞에서 남들 시선을 생각하는 것도 나에게 미안한 일이 될 수 있으니 더 생각말고 도전해보아야겠다. 가끔씩은 남들이 모두 아니라고 하는걸 해보고 평가는 귓등으로 듣는 여유도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