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나

by 내면여행자 은쇼

호스피스 병동의 창가에 기대어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붉은 노을이 내 인생을 되비추는 것 같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평생을 돈 때문에 괴로워했지..."

목소리가 텅 빈 병실에 흩어졌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숫자들이 오래된 필름처럼 깜빡이며 지나갔다.

그 때 임금 체불 당하지 않았더라면 늘 가난했던 20대에 숨 쉴 틈이 생겼을텐데...

그 때 연봉협상에 성공했다면 30대에 사랑했던 그녀가 떠나지 않았을텐데...

그 때 사기 당하지 않았더라면 50대에 그토록 꿈꾸던 작은 서점을 열 수 있었을텐데...

끝없는 가정들이 병실의 공기를 채웠다.


그때였다. 거울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나왔다. 검은 양복을 입은 그는 젊은 시절의 나였다. 그의 눈동자에는 나를 늘 괴롭히던 그 불안과 후회가 서려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눈치, 하지 못한 말들에 대한 후회, 과거를 되돌리고 싶은 갈망... 그 모든 것들이 그의 모습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후회하고 계시네요."

그가 내 침대 옆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목소리는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마치 늘 내 머릿속에서 들리던 후회의 목소리 같았다.


"당신은 내 후회가 만들어낸 거겠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제가 제안하는 거래도 당신의 마음이 원하는 거겠죠. 당신이 그토록 후회하는 순간들... 다시 돌아가서 바로잡고 싶지 않으신가요?"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병실의 벽이 무너지고, 그 뒤로 세 개의 장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밀린 급여 언제 받을 수 있을까요?'

속으로만 생각하고 꾹꾹 삼킨 말. 이번에도 입이 열리지 않았다. 사장님 눈치가 보였다. 회사 사정도 어려운데 급여 독촉하는 직원으로 찍힐까봐. 결국 또 다음 달을 기약했다.


이번에는 연봉협상 자리였다. 사장실의 공기가 무거웠다. 가습기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이 내 불안한 마음을 비추는 것 같았다.

사장이 말했다. "올해 임금도 동결해야 할 것 같네. "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아니,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월급을 올려달라고 하면 날 욕심쟁이로 볼까봐, 거절당하면 어쩌나 겁이 났다. 몇 년 째 평균연봉보다 훨씬 낮은 금액이었는데도.


친구와 마주 앉은 자리로 옮겨갔다. 카페의 은은한 재즈 선율이 흘렀다. 테이블 위에는 두 잔의 아메리카노가 식어가고 있었다.

"이거 진짜 확실한 거야. 넌 나 믿지?"

그의 말에 가슴 한켠이 불안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20년 지기 친구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기가 힘들었다."넌 나 믿지?" 라는 말에 마음이 무너져버렸다. 신뢰를 의심받는 게 두려웠던 걸까. 결국 통장을 들고 은행으로 향했다.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젊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보셨죠? 과거로 돌아가도 결국 같은 선택을 하고 말아요."


이제야 보였다. 내 인생을 옭아맨건 돈이 아니었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내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순간, 그리고 그것을 후회하며 낭비한 시간이었다. 창가에 맺힌 물방울 하나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손끝으로 창틀을 더듬으며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아니 타인의 시선 때문에 인생의 황금기를 모두 우울과 자책 속에 묻어버렸네."

매일 아침을 후회로 시작해서 밤을 자책으로 끝낸 그 시간들. 출근길 지하철에서 멍하니 앉아 '그때 그랬더라면...'하고 되뇌던 순간들. 퇴근 후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내가 바보였지...'라고 중얼거리던 밤들.


석양이 점점 짙어졌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늘 남의 눈치만 보다가 내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내 모습...

"잃어버린 건 결국 돈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던 거야."

마치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의 답을 찾은 것 같았다. 평생을 옭아매던 무거운 쇠사슬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기분이었다.


거울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젊은 나는... 아니, 내 안의 집착은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창밖의 노을이 완전히 저물었다. 병실에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밝아졌다. 이제 나는 알았다. 내가 싸워온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내가 만들어낸 눈치와 후회의 감옥에서, 드디어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간호사가 들어와 수액을 체크하고 물었다.

"편안하세요?"

차가운 링거액이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는 걸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였다.

이전 06화유리구슬 속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