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라는 나침반을 들고, 예측불가능한 모험을 떠나자
나는 미래를 통제하는 기계를 발명했다. 모든 순간이 엑셀 셀처럼 완벽하게 구획되어 있었다. 5년 후의 연봉, 3년 후의 직책, 다음 달의 여행지까지. 심지어 우연마저도 계산해 넣었다. 길을 걷다 마주칠 인연의 수, 예상치 못한 기회의 빈도수까지.
나만이 아닌 것 같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미래를 옭아매고 있었다. 스프레드시트로, 다이어리로, 수첩으로. 마치 내일이 도망가기라도 할 것처럼.
처음에는 완벽했다. 아침 7시 기상, 8시 운동, 9시 업무 시작. 모든 게 기계가 예측한 대로였다.
문제는 기계가 고장 나면서 시작됐다. 아니, 정확히는 기계가 너무 잘 작동하면서부터다.
화요일 오후 3시 27분, 계획에 없던 비가 내렸다. 기계는 즉시 작동해 우산을 펼치게 했다.
그때 그녀를 보았다. 우산도, 레인코트도 없이 비를 맞고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긴 생머리가 어깨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비를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팔을 벌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유로움이란 게 저런 것일까. 기계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계획에 없었으니까. 우산 아래서 나는 안전했지만, 왠지 모르게 질식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계가 이상한 수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행복 지수: 32%'
'성장 가능성: 17%'
'인생의 특별한 순간: 0회'
'예상치 못한 기쁨: 오류'
'삶의 만족도: 수치화 불가'
'현재 감정 상태: 정의되지 않은 변수'
화면은 깜빡거리다 멈췄다.
ERROR: LIFE CANNOT BE CALCULATED.
기계를 들여다보았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불완전했다.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은 모두 계획에 없던 것들이었다는 걸 기계는 계산해내지 못했다. 인생이란 건 마치 여행과도 같아서, 지도에 나오지 않은 골목에서 보물을 발견하기도 하는 법이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통제를 완전히 포기할 순 없었다. 그러면 또 다른 혼돈이 찾아올 테니까. 하지만 이대로는 계획이라는 쇠창살에 갇혀 질식할 것 같았다.
나는 망치를 들었다. 기계를 박살내고 싶은 충동과 싸웠다. 결국 완전히 해체하진 않았다. 대신 이틀 밤을 새워 작은 나침반으로 개조(改造)했다. 이제 나는 계획이라는 나침반을 들고, 예측불가능한 모험을 떠난다. 내가 정한 방향으로 가되, 그 길에서 만나는 우연한 순간들을 온전히 즐기기로 했다.
오늘도 나는 계획된 미래를 향해 달린다. 다만 이번에는 눈을 감지 않고, 길가에 핀 예상치 못한 꽃들도 보면서. 때로는 계획된 길에서 벗어나 낯선 골목을 탐험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비를 맞으며 웃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통제일지도 모른다. 내가 개척한 길 위에서 마주치는 예측불가함을 사랑하는 것.
가끔은 기계가 보여줬던 마지막 수치들이 궁금해진다. 지금의 '행복 지수'와 '성장 가능성'은 얼마일까.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수치화할 수 없는 순간들이 삶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비가 오는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오늘도 나침반을 들고 거리를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침반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불안해야 할 순간이었다. 하지만 웃음이 났다. 저 앞에 그녀가 보였다. 이번에도 우산은 없었다. 나침반이 고장 난 걸까, 아니면 드디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걸까.
나는 우산을 접었다. 나침반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계획에 없던 비를 맞으며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