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눈동자들은 같은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봉투 드릴까요?"
"그럼 이걸 담아줘야지 들고가? 이런 것도 물어보냐?"
편의점 알바생인 나는 카운터 앞에 선 중년 남성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올려다보려 했다. 날카로운 눈빛,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투. 나는 순간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목소리도 작아졌다. 시선은 자꾸만 바닥을 향했다. 마치 누군가가 내 목 뒤에 납덩어리를 달아놓은 것처럼.
그때였다. 어느 순간,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검은 고양이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상하게도 사람 목소리로 말했다.
"넌 왜 그렇게 자꾸 작아지려고 해?"
나는 놀라서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나온 사과. 고양이가 픽 웃었다.
"왜 사과해? 네가 잘못한 거 없잖아. 네 안의 두려움을 한번 똑바로 들여다봐."
다음 날,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야, 이거 유통기한 지난 거 아냐?"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먼저 내 안을 들여다보았다. 손끝부터 시작된 떨림.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답답함. 심장이 빠르게 뛰는데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어깨는 저절로 움츠러들고, 시선은 바닥을 향한다.
'왜 나는 이렇게 되는 걸까?'
오래된 녹음테이프처럼 내 안의 목소리들이 하나둘 재생되기 시작했다.
'나는 어려 보여서...'
'나는 무시당해도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맞서면 안 돼...'
그동안 나도 모르게 믿어왔던 생각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매대 위의 고양이가 작게 웃었다.
"이제 보이지? 네 안의 진짜 문제가? 남이 너를 무시하는 게 아니야. 네가 너를 무시하고 있는 거야."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 울렸다. 이 불편한 감각의 정체를 나는 이제 알았다.
열등감.
그것은 마치 오래된 상처처럼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손님의 눈을 마주 보았다.
1초, 2초, 3초.
그의 눈동자에서 나를 보았다.
성급한 말투 뒤에 숨은 불안감, 타인을 깎아내리며 얻는 우월감, 그리고 그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열등감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바라보았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또렷하게.
그러자 상대방도 내 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듯했다. 잠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시 1초, 2초, 3초.
마침내 그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흠... 앞으로는 신경 써."
도망치듯 허둥지둥 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내 안의 열등감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불편한 상황에서도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았다.
매번 누군가 나를 무시할 때마다,
나는 먼저 내 감정을 정확히 읽었다.
그리고 상대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상대방의 내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 손님은 자식이 제 맘 처럼 안돼서 속상한거죠?"
고양이가 놀란 듯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알았어?"
"눈빛이요. 자식에게 받은 상처가 아직도 눈동자에 남아있어요. 이제는 저도 그게 보여요."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깨달았다. 모든 날선 눈동자 뒤에는 상처받은 내면이 있다는 것을. 상처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는 악순환.
나는 이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단호한 한마디로, 때로는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어느 날 문득 보니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귓가에 고양이의 목소리가 맴도는 듯 했다.
"넌 이제 혼자서도, 모든 눈동자들을 읽을 수 있을 거야."
이제 나는 안다.
남의 무시가 아니라 내 안의 열등감이 문제였다는 걸.
나의 움츠러듦도, 회피도, 모두 내 안의 열등감이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열등감을 극복하는 건 직시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걸.
고양이는 사라졌지만, 그때의 깨달음은 내 안에서 계속 자라나고 있다.
모든 눈동자들은 같은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해받고 싶은 마음.
그래서 나는 이제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똑바로 바라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낸다.
그것이 내가 고양이에게서 배운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