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지내는 한국사람들을 보면 1-2년 정도 싱가포르에서 지내다가 싱가포르가 너무 좋아서 정착하게 되는 사람 반, 한국이 그리워서 돌아가는 사람이 반 정도인 것 같다. 나는 2년 정도 싱가포르에서 지내면서 거의 모든 면에서 만족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싱가포르가 좋아서 앞으로 이곳에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대학생 때 러시아, 스페인, 중국에서 잠시 살면서 한국보다 살기 좋은 나라를 고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1년 이상 머무른' 나라도, '1년 이상 있었는데도 계속 머무르고 싶어 지는' 나라도 싱가포르가 처음이다. 내가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닌 것을 아는 친구들이 가끔 ‘싱가포르에서 사는 거 좋아?’ 이렇게 물어보면 ‘응 진짜 좋아.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아’ 이렇게 두리뭉실하게 답을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면들이 그렇게 좋은지 자세히 풀어나가보려고 한다.
* https://brunch.co.kr/@eunspiration/21 이 글을 참고해보면 내가 왜 싱가포르를 오래 머물면서 일할 나라로 선택하였는지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가 치안이 좋은 편에 속한다. 적어도 여자 혼자 밤에 돌아다녀도 안전한 편이니까. 러시아, 스페인 중국 같은 대도시에서 조차도 밤에는 긴장을 하고 돌아다녔던 경험이 있기에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처럼 꽤 안전한 나라 출신인 나는 싱가포르에서 한국보다 더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밤늦게 돌아다녀도 ‘큰 문제’가 덜 생길 뿐. 작고 사소한 불쾌한 일들은 일상 및 직장 생활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겪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짧은 치마를 입고 돌아다니면 뚫어져라 대놓고 쳐다보는 아저씨들, 택시를 혼자 타면 꼭 말을 걸려고 하고 반말로 개인적인 것들을 물어보려고 하거나 훈계를 하는 기사 아저씨들, 대중교통 이용 시 불쾌하게 몸을 닿는 타인들.. 등등 뭔가 신고하기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반복적으로 겪게 되는 불편한 일들. 이는 한국 여성이라면 모두 다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불편한 일들을 싱가포르에서는 놀랍게도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다. 여기서는 소위 말하는 길거리에서 ‘시선 강간’을 당해본 적도 없고, 택시 기사가 불편한 말을 한 적도 없다. 법이 워낙 강력한 나라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소한 행동까지도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사소하지만 불쾌한 일들까지 예방이 잘 되다 보니 성폭력, 성희롱 같은 문제들을 상상할 수도 없다. ‘큰 문제’들이 적다고 해서 치안이 좋은 나라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불쾌한 일들까지도 없는 나라가 진정으로 ‘치안이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덜렁대는 성격 때문에 핸드폰, 지갑 등을 많이 잃어버리고는 하였는데, 러시아, 스페인,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 아주 좋은 표적이 된다. (아니 아닌 사람조차도...) 이런 곳에서 한번 잃어버린 물건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 한국은 그에 비해서는 조금 낫다. 그래도 체감상 핸드폰, 지갑을 잃어버리면 그대로 찾을 확률이 반보다는 조금 낮다고 할 수 있다. 본의 아니게 싱가포르에서 이를 실험한(?) 결과를 알려주면 나는 버스에서 지갑을 무려 두 번이나 놓고 온 적이 있었는데 두 번 다 지갑 안에 그대로 돈이 들어있는 채로 찾을 수 있었다. 역시 강력한 법 때문인지 사람들이 남의 물건에 대해 조금 더 조심해하는 느낌이다. (조그만 것을 탐하면 아주 큰일 당하게 해주는 나라랄까)
한국에서 인사말로 흔하게 ‘예뻐졌네’ ‘살이 쪘네’ ‘살이 빠졌네’ '메이크업이 잘됬네’ ‘옷을 잘 입었네’ 등등 외모에 대한 칭찬 및 지적을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 한국인이 외모에 대해 끊임없이 신경 쓰게 되는 이유 중에 이러한 인사말도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가벼운 인사말 정도로 치부가 되면서 매일매일 타인에 의해 외모 평가를 받는데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가 있겠는가. 싱가포르에서는 외모에 대한 지적은 물론이며 칭찬도 아주 조심스럽게 한다. ‘이쁘다’ ‘잘생겼다’하는 말 또한 잘하지 않으며 이런 말들을 보통 연인끼리만 주고받는다. 직장 내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는 ‘Sexual Harassment’ 성희롱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 외모에 대한 언급을 안하고 사람들이 언급을 하지 않으니 굳이 외모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덕분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입고 싶은 대로, 화장하고 싶은 대로 (대부분 잘 안 함) 살게 된다.
한국에서는 ‘남자 친구는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아이는 있는지’ 등등 굉장히 사적인 질문들도 스스럼없이 던지고는 한다. 정인지 오지랖인지 모르겠으나 나를 나 그대로 바라봐주려고 한다기보다는 나의 ‘지표’들과 ‘관계’를 통해 나를 규정지으려고 하는 느낌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예를 들어 함께 6개월 동안 일한 동료들의 나이가 몇인지, 여자 친구/ 남자 친구가 있는지, 결혼했는지, 게이인지 아닌지 등등 개인적인 정보들을 다 알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왜냐하면 굳이 ‘안 물어보니까’. 이 사람과 같이 일을 하면서 이 사람의 나이와 여자 친구/남자 친구 유무의 여부가 협업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물론 사람인지라 사적인 것을 궁금해 할 수는 있으나 궁금한 경우라도 그 사람이 스스로 밝히고 싶을 때 밝히도록 내버려 둔다. 여기서 만약 나이와 같은 개인정보를 친분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럼없이 물어본다면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 몰상식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이렇게 서로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오지랖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특히 커리어에 있어서 나이 및 결혼 유무 등 개인에 관련된 사실이 기회를 잡는데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 회식이 거의 없다. 회식을 안 하기 때문에 오히려 가끔씩 있는 회식이 반가울 정도이다. 만약 선약이 있거나 가기 싫다면 당당하게 이번 회식에는 참석을 안 하겠다고 말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회식을 하더라도 공식적인 자리는 보통 1차로 끝나고 만다. 만약 마음에 맞는 동료들끼리 한잔 더 하고 싶으면 그건 자유이지만 밤늦게까지 직원들을 회식자리에 붙잡아 놓으려고 하는 상사는 보지 못했다. 술을 먹을 때도 원샷을 강요하는 사람이 없다. 술은 본인이 먹고 싶은 대로, 먹기 싫다면 거부를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 출퇴근이 자유로운 편이다. 물론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Work From Home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편이다. 출퇴근 시간도 크게 엄격하지 않다. 야근할 일이 가끔 생기기는 하지만 편하게 집에 일찍 퇴근해서 일을 하더라도 업무 성과만 괜찮다면 문제가 아니다.
- 가족 우선주의이다. 아침에 일어나 메일박스를 열면 '나 아이 학교 데려다줘야 해서 조금 늦게 출근할게' '아이 생일이라 일찍 퇴근할게' 등 가족 관련해서 보호자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경중의 정도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시간을 쓴다.
이와 같이 Work와 Life의 선이 확실해서 그런지 싱가포르에서는 ‘일’때문에 스트레스는 생길 수 있어도 '사람'으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는 굉장히 적은 편이다. 여기서도 회사 바이 회사 부서 바이 부서의 원칙은 적용되지만 기본적으로 개인의 시간을 침해하지 않고, 불필요한 언급이 없고, Flexible 하게 시간을 쓸 수 있는 문화 때문에 뭔가 내 삶을 희생하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이 외에 리스트가 더 있어 2편으로 나누어 포스트를 하려고 한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나를 '여자'라는 프레임보다는 '사람'으로 봐주고, 싱가포르에는 '사람'이 살고 싶고 일하고 싶은 곳을 만드는 여러 (초큼 많이 강력한) 제도 및 문화가 있기 때문에 2편을 나누어야 할 정도의 리스트가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투비컨티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