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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스 Jun 21. 2020

[리뷰] 박연준의 『소란』을 읽고

지금은, 시끄럽고 어수선함.

괜찮아요. 우리가 겪은 모든 소란騷亂은 우리의 소란巢卵이 될 테니까요.


  시끄럽고 어수선함을 뜻하는 소란騷亂이 암탉의 알 낳을 자리를 바로 찾도록 둥지에 넣어두는 달걀인 소란巢卵이 될 것이라는 서문으로 『소란』은 시작된다.




  스물은 시끄럽고 어수선한 시기다. 사랑에도, 일에도, 슬픔에도 서툴고 유난을 떨며 뒤늦게 후회한다. 이런 소란스러운 시기도 지나가기 마련이다. 시간을 타고 서른의 정거장에 잠시 내려 노선표에서 스물을 둘러보면, 스물이란 참 어리석고, 유치하면서도 맑고 열렬했던 시기임을 깨닫는다. 시끄럽고 어수선했던 스물을 지나, 점차 나의 몫을 찾아 자리 잡는 서른을 거쳐가는 과정을 박연준 시인은 '소란'이란 단어 하나로 깔끔하게 정의했다.


  서른과는 거리가 먼 스물의 나로서, 서른의 소란을 활자로 접한다고 깨달을 순 없었다. 반대로 스물의 시끄럽고 어수선한 소란은 마치 나와 나의 친구들을 옮겨놓은 듯했다.


  스물은 아프다. 내가 스물에 속해있어선지, 유독 나와 내 친구들은 이 시기에 아파한다. 사랑, 인간관계, 불확실한 미래와 직장, 그리고 돈. 아파도 참 다양하게 아프다. 왜 아픈가? 에 대한 물음을 생각할 틈도 없이 아프다. 당장 아픔에 대처하기에도 빡빡하기에, 왜 아픈지에 대해서 물어볼 만큼의 여유로움은 없다. 그건 사치다.

  박연준 시인 역시 사랑에 실패하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실연에 실패하게 되는 시기를 겪었다. 기울어진 것들 유독 아끼는 시인에겐 해질녘에 잠깐 볕이 얼굴을 내미는 방의 서쪽, 어깨가 한쪽으로 살짝 기운 사람, 말없이 피고 지는 모든 꽃, 파닥이다 사그라지는 꿈이야말로 좋은 것이다. 어딘가 모자라면서도 허탈한 웃음이 피어나는 존재를 사랑하는 시인에게도 스물의 소란스러움 사랑은 어려운 것이었나보다.



가끔 걱정이 될 때가 있다. 그가 너무 집중한 나머지, 작아지고 작아져 바둑돌이 되면 어쩌지? 수많은 검정 돌과 흰돌 사이에서 그를 잘 골라낼 수 있을까?



  사랑하는 애인에게 익숙해진 나머지, 그를 당연하게 여겨버리는 때가 오면 어쩌지란 불안은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 한다. 단순하게 불안이란 감정이 사랑을 증폭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불안 역시 근원을 따라가보면 애인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있기에, 결국 사랑이 사랑을 낳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숙한 시기엔, 사랑이 불안으로부터 기초되었다고 여기기도 한다. '사랑-불안-사랑'이 아닌, '불안-사랑'에서 그치기에 불안은 불행으로 달려간다.


하필이라고 말을 하고 보니 참 좋네요. 어찌할 수 없음, 속절없음이 사랑의 속성일 테니까. 사랑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싶네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 것은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할게요.


  하-필. 사랑과 참 잘 어울리는 단어다. 속절없음이 사랑의 속성이란 말 역시 참 맑은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벌어진다. 눈 깜짝할 틈보다도 빠르며, 아침처럼 느닷없이 온다. 사랑하는 이의 무언가를 콕 집어 사랑하기란 벌어질 수 없기에, 박연준 시인이 당신에게 말하는 고백은 늦었지만 와 닿는 고백이다.



그러나 한 시절 사랑한 것들과 그로 인해 품었던 슬픔들이 남은 내 삶의 토대를 이룰 것임을 알고 있다. 슬픔을 지나온 힘으로 올 새로운 슬픔까지 긍정할 수 있음을, 세상은 슬픔의 힘으로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이제 나는, 겨우 믿는다.



  몰아치는 슬픔은 지친다. 나만 왜 이런 슬픔을 겪는가? 왠지 슬픔은 나에게만 유별나고 각박하게 구는 듯하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게 아니었나보다.『소란』중 이런 문장이 나온다. '알 수 없었다. 왜 이토록 슬픈지. 왜 슬픔은 나를 좋아해서 하필 내 위에서 요란하게 작두를 타고 싶어하는지, 아니 내가 슬픔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의아했다.'p.180 박연준 시인도 슬픔에게 지겹도록 시달렸나보다. 왠지 이 자체로 위로가 된다. 나만 그런게 아니다. 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홀가분해진다.




  『소란』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박연준 시인의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것이었다.『소란』에 담긴 사랑, 일상, 시와 슬픔에 대한 글은 위로를 겨냥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음에도 위로를 준다. 참으로 따뜻한 책이다. 아무튼, 읽기로 예정했던 책은 뒤로 잠시 미뤄놓고, 박연준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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