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매인 꿈, 시도란 탈출
심장이 뛰고 뜨거운 숨을 내뱉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켠에 꿈을 품고 살아간다. 이 꿈은 삶의 연료가 되어 질주를 가능하게 하지만 때로는 삶을 좀 먹는 벌레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우린 나름대로의 취향과 재능을 찾고, 그 둘이 함께 가리키는 곳을 꿈이라 확신하며 이정표로 삼는다. 그 여정 중에서 우린 무언가 잘못되었단 직감과 신호를 계속해서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재능이 없단 걸 인정하고, 꿈을 부정하는 행위엔 상당히 큰 용기가 필요하기에 그만두라는 주변의 언질을 무시하게 된다. 꿈을 놓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 꿈은 삶을 좀 먹기 시작한다.
소유가 매달렸던 ‘영화작가’란 꿈은 스스로가 온전히 만들어낸 꿈이 아니다. 쇼코가 넌지시 던진 ‘넌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란 말이 소유의 마음에 자국을 남겼을 뿐이다. 그 자국은 소유 자신의 일부분을 포기하게끔 했다. 소유는 꿈을 얻는 대신 인간관계와 이십대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성과를 내지 못한 그녀는 다른 이들의 선택과 처지를 비난하며 스스로 끔찍하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자유를 향한 꿈에 묶인 소유는 자신과 반대로 안정된 삶을 선택한 쇼코를 비웃는다. 또한 돈을 이상향으로 선택한 친구들을 모두 속물로 단정지어버린다. 자유와 도전이 배제된, 틀에 박힌 삶은 소유의 관점에서 보잘 것 없는 삶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타협한 삶이 비난 받고 비웃음 당할만한 선택이라고 볼 수는 없다. 쇼코에게도 꿈이 있었으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현실과 타협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 속에서 마냥 헤엄치기에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기 때문이다.
소유에겐 창작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꿈에 매달려 매일같이 글을 썼으며 단편영화제작을 하는 등 부족한 재능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창작이란, 노력보단 재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재능 없는 창작은 커다란 고통이 동반되는 작업이다. 무(無)를 유(有)로 다듬어야하며 결실을 맺기 위해선 재능이란 녀석에게 도움을 받아야한다. 물론 재능도 노력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빛을 발하기 어렵다. 재능은 시도 없이는 발현 될 수 없으며 노력 없인 결과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유와 같이, 꿈에 대한 재능의 부재로 고통 받는 삶을 그녀의 어리석음으로 치부하고 비난해선 안 된다. 재능 없음을 인정하고 꿈을 놓아버리기란 자신의 뼈를 깎아내리는 것 이상의 고통이 따른다. 소유의 잘못이라곤 재능의 부재뿐이다. 우린 그녀에게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닌, 그 고통으로부터 빠져나와 새로운 시작을 도모할 수 있느냐를 살펴보아야한다. 소유야말로 꿈에 휘말린 전형적인 '오늘날의 우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엔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자신의 처지와 재능은 꿈을 향한 시도가 한 번이라도 있어야만 파악할 수 있다. 먼저 꿈 근처를 서성여봤던 자들의 충고도 몸소 겪어보지 않는 이상 잔소리가 되어 귓등에 쌓이기 마련이다. 그럴 땐 직접 그 너머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후, 재능이 없다는 판단이 서면 문을 닫고 돌아서면 된다. 실패를 겪더라도 다시 꿈을 설정하면 되는 것이다. 누구나 새로운 시작을 꿈 꿀 수 있으며,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데에는 일말의 재능도 필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