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보다 힘든 부장님 언어

by 은수달

"파일함에 있는 계약서 원본 찾아서 찢은 후 사진 찍어서 보내줘요."


나의 부장님은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문서에 취약하고 업무 전달력이 떨어진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며칠 전, 외국인의 숙소를 옮기게 되어 다른 부동산이랑 계약한 뒤 계약서 2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중개 수수료랑 잔금을 각각 보내주란다.


수수료 계좌는 톡으로 받았지만, 잔금 보내줄 계좌가 보이지 않아 물으니 계약서에 나와있단다. 뒷장을 넘겨보니 별첨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잠시 후, 도시가스 전입신고를 대신하란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전입 신청을 하려고 하니 사용자의 인적사항을 기재해야 했다.

'사용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모르는데?'


마침 부장님이 부재중이라 잠시 미뤄두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갑자기 연락 와서는 파일함에 있는 계약서를 찾아 찢으란다. 이유를 물으니 계약을 취소하고 다른 곳이랑 계약하기로 했단다. 이번에도 전후 사정을 몰라 되묻고 말았다.


"전부 다 찢을까요?"

"네. 찢은 사실 알 수 있게 사진 찍어서 보내줘요."


종이가 제법 두꺼운 데다 정확히 어느 부분을 찢어야 할지 몰라 매도인과 매수인 정도는 알 수 있도록 대강만 찢어 사진으로 남겼다.


성격이 급하고 가끔 중요한 내용을 빼먹는 사장님을 상대하기도 버거운데, 넘사벽 부장님 덕분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아무리 부분적인 일만 처리하는 입장이라고 해도, 업무의 전반적인 상황을 알아야 좀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거기다 소통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면 큰 실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몇 번씩 확인해봐야 한다.


오늘도 계약 2건 때문에 서류를 여러 번 확인하고 메모하면서 진땀 빼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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