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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독일상 훔쳐보기 33화

33. 연애의 행방

by 은수달
문제는 행동으로 옮기느냐 마느냐인데 그건 본인의 인간성보다 그런 기회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하가시노 게이고, <연애의 행방>


그와 열차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그녀는 땅콩빵을 먹고 있었다. 그가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자연스레 다리를 바깥쪽으로 돌렸다. 뭔가 민망한 기분이 들어서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빵을 얼른 먹어버렸다.


분홍색 표지가 인상적인 연애 소설의 책장을 넘기면서도 옆자리에 앉은 그가 신경 쓰였다. 창가에 비친 실루엣을 얼핏 보니 구남친을 살짝 닮았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도.


잘생긴 남녀는 얼굴값을 한다는 얘기가 대체로 사실이라는 걸, 그녀는 훈남과 연애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또다시 그와 사귈 기회가 온다면 쉽게 거절하진 못할 것 같다.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그는 휴대전화를 응시했고, 그녀는 책장을 조용히 넘겼다. 그들 사이의 간극이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냈지만, 그는 얼마 못 가 내려야 했다.


"잠시만요."

"네."


커다란 가방을 메고 빠져나간 뒤 그녀는 무심코 그의 빈자리를 쳐다보았다. 좌석에 무선 이어폰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잽싸게 이어폰을 가지고 그를 따라나갔다.


"저기요. 이어폰 떨어졌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채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을 아쉽게 쳐다보며 그녀는 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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