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조사 좀 얼른 해줄래?"
사장님의 재촉에 현장을 둘러보며 재고장에 적힌 재고와 비교하며 수정할 내용을 기록한다. 관리부 소속이지만, 부장님이 입원한 운전기사 대신 납품 다니느라 재고파악이 나한테 넘어왔다. 잠시 둘러보는데도 땀방울이 맺힌다.
외국인 직원이 1차 작업을 해둔 터라 그나마 수월하게 일을 마쳤지만, 정확성을 요구하는 업무라서 매번 신경이 쓰인다.
노동은 신성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신성하다고 해서 덜 힘든 건 분명 아니다. 각자 감당해야 할 땀방울의 할당량이 있을 뿐.
수박의 계절이 돌아왔다. 더위 먹지 말라고 일주일에 한두 번 직원들한테 수박이나 아이스크림을 나눠준다. 냉장고엔 얼음이 떨어질 걸 대비해 비상용 얼음과 생수를 쟁여놓았다. 더위를 많이 타는 쪼꼬 사원한텐 쿨 매트를 마련해 주고 얼음물을 제공한다. 이 얼마나 복 받은 사원인가!
논밭이 즐비한 우리 동네엔 아침 일찍 밭일하는 분들이 더러 보인다. 주말 농장인지 텃밭에 이름이 적힌 팻말이 보인다. 구겨진 운동화와 거꾸로 뒤집어놓은 장화, 그리고 농기구. 어릴 적 외가가 생각난다.
직업에는 계급이 있을지 몰라도 노동은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한테만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는 현장 직원들이 더위 먹거나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분주하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