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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는 게 어때서요?

분노에는 이유가 있다

by 은수달


"사장님, 제발 화만 내지 마시고 제 말부터 들어보세요."


툭하면 화내거나 짜증 내는 사장님의 태도를 견디기 힘들어 부탁한 적이 있다. 사장님이 화내는 이유는 주로 본인 뜻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 때이다. 통제 강박이 워낙 강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본인 생각대로 일이 척척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던가.


"어렵다고 미루지만 마시고 레시피 보면서 천천히 해보세요. 저도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었다고요."


음료나 빵을 만드는 일이 어렵다며 차일피일 미루는 동료한테 결국 한 마디하고 말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다. 똑같이 월급 받는데, 심지어 상대가 나보다 많이 받는데 일은 내가 더 많이 하고 있다.


"점장님이 직원들한테 존댓말 쓰면서 먼저 존중해 보세요. 그럼 직원들도 행동을 조심하거나 예의를 갖출 거예요."


카페일할 때 점장님이 직원들을 편하게 대해줬더니 만만하게 보거나 일을 게을리한다며 하소연을 한 적 있다.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한텐 나이를 불문하고 존대하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그래야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리거나 이유 없이 화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딸이 나랑 얘기를 안 하려고 해요. 말만 꺼내면 화부터 내요."

"화내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나요?"

"요즘 시험 때문에 예민한 것 같기도 하고, 저한테 서운한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 억지로 대화를 시도하기보단 따님의 감정을 잘 살펴보세요. 그리고 최대한 부드럽게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세요. 엄마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 저절로 말문을 열 테니까요."


한없이 순했던 막내 조카가 네 살 무렵 난봉꾼(?)으로 돌변해서 당황한 기억이 떠올랐다. 조카 역시 통제 강박이 심했기에 장난감을 만들다 조각 하나만 잃어버려도 난리를 쳤고, 밥 먹다가 소리 지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럴 때는 같이 흥분하거나 화내기보단 아이의 입장에 공감해 준 뒤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하며 감정부터 가라앉히는 게 효과적이었다.


분노의 원인 중 하나가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감정과 평가'를 말하는데, 이는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문지현, 김수경, <화내는 게 나쁜 건가요?>


자존감이 낮으면 분노 버튼이 건드려질 가능성이 높다. 나라는 존재가 위협당한다고 느끼거나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할 때 대부분 '화'를 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화를 낸다면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나도 한 때는 나의 존재가 무시당한다고 여겨질 때 화가 많이 났었다. 중국에서 머물 때 택시 기사가 미터기를 조작해 바가지요금을 부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미터기가 고장 난 거 아니냐고 조심스레 물었지만, 아니라고 우겨서 결국 따지고 말았다. 사장님이 나의 업무 능력을 의심하며 자존심을 건드렸을 때는 혼자 울컥하기도 했다.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바른 관점을 가지고, 바른 시점에, 바른 의도를 갖고 바르게 화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


화도 적당히, 적절히 내야 한다는 사실을 나이 들수록 깨닫고 있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것인가. 잠시 감정을 누른 채 화를 낼 타이밍을 노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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