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 님은 상냥하고 다정할 뿐만 아니라 책에 진심인 분입니다."
삼십 대 초반까지 까칠함의 대명사였던 내가 이젠 다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다정함 혹은 친절함의 기준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그토록 타인에게 불친절하거나 무심한 걸까.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 씨>의 주인공이 자신을 죄인으로 만든 인물한테 복수하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대다수는 복수를 계획하기는커녕 순간의 감정 때문에 목표를 이루기도 전에 스스로 일을 망치곤 한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비판적 사고와 함께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정한 복수를 원한다면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일단 의심하라, 그 끝에 답이 있다
내게 상처를 주고 떠난 연인을 원망하며 복수하고 싶은가, 나를 이유 없이 괴롭혔던 학우를 찾아가 따지고 싶은가. 최고의 복수는 보란 듯이 잘 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상처가 너무 깊어서 복수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복수를 원한다면 들끓는 감정부터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친구들이랑 도시락을 나눠먹었다. 그중 한 명이 내가 가져간 반찬에 트집 잡으며 무시했고, 교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임한테 일러바치며 얄밉게 굴었다. 그 뒤 각자 대학에 가면서 자연스레 멀어졌고, 한참 후에 그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미대에 다니는데 누드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난 부드럽게 거절했고, 그렇게 잘난 척하던 친구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걸 보면서 통쾌함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학창 시절에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도 인생을 살아보기 전까진 결말을 알 수 없다. 또래 자녀들이랑 끊임없이 비교하며 우위를 가리던 엄마들은 자식이 뜻대로 되지 않자 분풀이를 엉뚱한 데 한다. 아들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억지로 성형외과에 끌고 가는 엄마, 의대에 진학하지 않는다며 부모자식의 연을 끊는 아버지 등등.
아무리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능한 친절함을 보여주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 제목처럼, 다정함은 다방면에서 강점으로 작용하므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6088365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0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