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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웨이팅에 관한 회고

by 은수달


맛집 웨이팅을 싫어하기로 소문났지만, 때론 상황에 따라 대기해야 한다. 특히 조카님들을 모실 때면 거부할 권리 따윈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쇼핑할 동안 막둥이랑 딤딤섬 앞에 기다리고 있을래?"
청유를 가장한 어마마마의 명령이 떨어졌고, 막내 조카는 게임을 하면서도 이모랑 수다를 떠느라 바쁘다.
"근데 이모 여기 딤섬 별로던데..."
"그래? 그럼 다른 요리 먹으면 되지."

이름값 못하는 '딤딤섬'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린 결과 온 가족이 무사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다른 요리는 괜찮았고, 딤섬은 딤타오에서 먹어야 한다는 진리(?)를 얻었다.

영화를 방불케 하는 웨이팅은 몇 년 전 제주에서 벌어졌다. 주말엔 대기가 기본인 음식점이 대다수인 데다 식구가 많다 보니 웨이팅 전쟁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고기국수를 먹고 싶다는 조카들의 성화에 여동생은 가족들을 승합차에 싣고 달렸고, 난 테이블링으로 예약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한 뒤 5분 이내에 대기확정코드를 입력하지 않으면 자동취소된단다.

"얼마나 남았지? 한번 더 미룰까?"
부산만큼 교통상황을 예측하기 힘든 주말의 제주시내. 여동생과 계속해서 상의해 가며 눈치작전을 벌였고, 두 번의 미루기 결과 아슬하게 매장 앞에 도착했다.
"여기 내려서 코드부터 입력할래?"

아이러니하게도 '국시트멍'은 제주에서 가성비가 좋은 음식점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얼마 전 추석당일에도 오픈한 음식점을 검색해 보니 본가 근처에 딱 두 군데 있었다. 그중 돼지국밥은 조카님이 전날 먹었다고 해서 건너뛰고 최종후보 '이가솜씨'만 남았다. 이곳 역시 테이블링 했지만, 생각보다 대기가 좀 있었다. 그래도 차선책이 없었기에 기다렸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오늘 저녁엔 '달빛에 구운 고등어'를 방문하면서 미리 테이블링 했고, 한번 미루기해서 적절한 시간에 도착했다.
"여긴 고등어 빼고 다 맛있는 것 같아요. 이번엔 볼락이랑 임연수 구이 시키죠."
확고한 의사를 밝히자 일행은 순순히 동의했고, 우린 순식간에 생선 두 마리와 밑반찬을 해치웠다.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이재모 피자는 웨이팅이 무서워 도전을 못했고, 돼지 껍데기로 유명한 '초필살 돼지구이'는 어버이날 아버지랑 딱 한 번 가보았다. 먹는 데 진심이긴 하지만, 자발적으로 맛집을 삼십 분 이상 기다린 적은 없다. 미식만큼 수달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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