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부장한테 준 서류 못 봤니?"
"어떤 서류요?"
"함안에 있는 업체인데..."
키워드 몇 개만 던져주고 난센스 퀴즈를 내는 게 취미인 사장님은 이번에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신다. 혹시나 싶어 부장님 책상을 살펴보니 사장님이 얘기한 것으로 추측되는 서류가 보였다. 술래잡기에 성공한 뒤 한숨 돌리는데, 이번엔 지인들한테 보낼 답장을 다듬어달라고 했다.
지난번 독서모임에선 각자 읽은 책을 소개했는데, 한 분이 전날 번개모임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적당히 공감해 주는 척하며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지만, 중간에 또!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나마 옆에 앉은 분이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회사에선 어쩔 수 없이 P가 된다. 각자 마시고 싶은 음료를 공유한 뒤 메모해서 별다방으로 향한다. 네 돈 내산이지만 뿌듯하다.
귀가한 뒤 라면을 끓여 먹으며 드라마 '자백의 대가'를 본다. 두 여주의 실감 나는 연기 덕분에 빠져든다. 이렇게 침묵 속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연말이 다가오면 집안행사부터 회사일, 개인일정까지 휘몰아친다. 사장님 모시고 외근하는 길에도 몇 차례 전화가 걸려온다. 보험 설계사는 갱신할 보험이 있다며 연락을 해오지만 바빠서 계속 놓친다. 그 와중에 근손실은 두려워서 필라테스는 열심히 간다.
반나절의 침묵, 그리고 고독.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리액션의 여왕이라 칭송받지만, 사실 남의 일에 그다지 관심 없을 뿐 아니라 영양가 없는 대화에 집중하고 나면 급격히 피곤해진다. 내일이면 또 전쟁터에서 누군가의 총알받이가 되겠지만, 월급도 받았으니 기꺼이 감수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