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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May 07. 2022

25화 옛사랑의 그림자


"내일 일 때문에 좀 늦을 것 같은데요..."

"전 늦게 모여도 상관없어요."


오늘은 모임 운영진들끼리 모여서 회의하기로 한 날이다. 9시가 조금 넘자 K가 헐레벌떡 도착했다. 그는 새로 뽑힌 운영진이자 나의 전남친이다. 익숙한 말투와 체취, 그리고 은은한 향수. 우린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걸 공유했었고, 합의하에 헤어졌으며, 모임에서 다시 인연이 닿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나의 절친 M은 K와의 과거를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으며, 또 다른 운영진 J는 우리의 과거를 모른다.


"겉으론 강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은 여리고 상처가 많은 사람이네요."

"욕망이 강하지만 그 욕망에 휩쓸리고 있어요."

"처음엔 잘해주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네요. 관계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나 빼곤 다들 솔로라 연애에 특히 관심이 많았고, 나름의 조언을 해주었다.


문득 K와의 과거가 떠올랐다. 서로를 어느 정도 파악한 뒤 연애를 시작했지만, 결국 가치관 차이와 어긋난 타이밍 때문에 이별을 결심했다. 그 때문에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니 덤덤해졌다. 가끔 그의 안부를 전해 듣기만 하다가 모임에서 재회했을 때 기분이 이상하고 어색했다. 그도 날 의식하는지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성격이나 취향을 잘 알기에 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 같다. 예전처럼 장난치거나 농담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살리기도 한다. 앞으로도 우린 같이 모임을 운영하면서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끝나는 인연도 있고, 끊어질 듯 계속 이어지는 인연도 있다. 한 번 돌아서면 뒤도 안 보는 성격이지만, 이상하게 K와의 만남은 가끔씩 곱씹어보게 된다.


옛사랑의 그림자는 그렇게 달 속에 자취를 감춘 채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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