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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May 08. 2022

26화 구체적으로 말해 봐

26. 구체적으로 말해 봐


"구체적으로 좀 말해줄래요?"


며칠 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애삼이의 책상이 오늘 도착했단다. 혼자서는 조립이 힘드니 도와달라고 했고, 옆에서 지켜보다가 필요한 순간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조립이 만만치 않았다. 설명서에 나온 순서대로 하나씩 나사를 끼워서 조이기 시작. 그런데 한쪽을 조으면 다른 쪽이 안 맞아서 같은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야만 했다.


"나사를 조을 땐 대각선 순으로 해주는 게 좋아요. 그래야 나중에 안 틀어지거든요."


애삼이의 보충 설명을 들어가며 마지막 부품을 조립하려고 하는데, 구멍의 위치가 안 맞는지 나사가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해 봐요."

"나사가 직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계속 기울어져요."

알고 보니 구멍 자체가 살짝 이상했다. 억지로 균형을 맞추어가며 한 시간 만에 조립 완성!!


"할인받은 가격은 결국 인건비였네요."



하지만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이번엔 데스크톱 본체와 모니터를 연결하는 작업이 남았다. 모니터가 크고 무거워서 조심스레 다룰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애삼이는 책상 상판에 모니터 2대를 올린 뒤 그대로 옮기려고 했다.


"이렇게 하다 모니터 떨어트리면 어떡해요?"

"괜찮아요. 조심해서 옮기면 돼요."

"앗...."


결국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상판을 옮기려는 순간, 모니터 한 대가 가출한 것이다.


"살아... 있을까요?"

"일단 연결해봐야죠."

"저것 좀 들어줄래요?"

"뭐요?"

"목이요."

"이 선 좀 잡아줘요."

"어떤 선이요?"


책상 아래 연결하려는 선들이 서로 꼬여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힘들었다. 일단 꼬인 선부터 풀어야 했다.


"대강 연결하면 돼요."

"선끼리 꼬이면 나중에 다시 연결해야 하잖아요. 일단 풀게요."




연애 초기엔 서로에 대해 알아가느라 바쁘다. 살아온 환경부터 언어습관까지. 처음엔 서로 다른 점에 이끌렸다면, 나중엔 차이점 때문에 다투게 된다.


"국이 좀 싱겁네요."

"목말라요."

"오늘은 매콤한 게 당기는데..."


원하는 게 있을 땐 바로 얘기하면 서로 편한데, 왜 많은 이들이 돌려서 얘기하는 걸까. 애삼이도 종종 '답정남'이 되어 '내 마음을 맞혀 봐' 퀴즈를 낸다.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는데, 네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아!!"


연애를 하다 보면 이렇게 외치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연애는 스무고개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해도 가끔 오해가 생기는데, 간접 화법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오빠, 나 달라진 거 없어?"

"오빠, 저거 예쁘지?"

"자기야, 나 배고파."


조카들 역시 원하는 걸 얘기 못하고 쓸데없이 눈치 보거나 짜증 낼 때가 있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당당하게, 구체적으로 얘기해야지."


반복된 훈련의 결과였을까. 조카들도, 애삼이도, 친구들도 어느 순간부터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주어나 목적어 등 중요한 정보를 빼먹어서 상대방을 혼란에 빠트리거나 불필요한 질문을 거듭하게 만들지 말자. 대화의 목적은 정보 파악과 소통이다. 어설픈 탐정 놀이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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