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납치라 쓰고 힐링이라 읽는다

by 은수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비밀이요. 도착하면 알게 될 거예요."

"나 버리고 가는 거 아니죠?"

"그럼요. 말 잘 들으면 안전하게 집에 모셔다 드릴게요."


오래전, 누군가를 차에 태운 채 바닷가를 향해 달렸다. 상대한테 자차가 없었기에 운전은 내가 도맡았지만,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둘만의 공간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삼십 분 남짓 걸려 도착한 곳은 일광 해수욕장이다. 그전에 가본 적이 없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갑작스러운 납치극을 벌였고, 그도 즐기는 눈치라 뿌듯했다. 늘 비슷한 패턴으로 데이트를 하다 보면 가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진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영화 보기. 보편적인 데이트 코스에서 벗어나려면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 한다.


"스킨십도 대화도 남자가 리드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누가 그래요? 남자가 리드해야 한다고?"

"드라마나 영화에선 대부분 남자가 그러던데..."


자타공인 계획러이지만 나도 때론 누군가 정해주는 일정을 따라가는 게 편할 때가 있다. 그래서 해외여행은 패키지를 선호한다. 일상이 계획과 조율의 연속이라 그에 대한 피로감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달 님이 매번 어디 갈지 정해주니까 편하긴 한데, 미안하기도 해요."

"그럼 가고 싶은 곳 생기면 언제든 얘기해요. 최대한 반영할게요."


연애 경험도, 맛집 정보도 상대보단 풍부한 편이라 자연스레 내가 리드하게 된다. 상대가 제시하는 코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 실망하거나 다투는 것보단, 귀찮아도 미리 정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이벤트가 생겨도 감동하거나 놀랄 준비가 되어 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오다가 주웠어."


생일 등 각종 기념일에 대놓고 준비한 선물보단 소소함을 느낄 수 있는 선물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의외로 많다. 연애를 시작하면 선물이나 이벤트를 고민하는 남자들이 많은데, 그럴 시간에 상대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부분에 감동을 받는지 연구해 보자. 그리고 내가 주고 싶은 선물보다는, 상대한테 필요하거나 기억할만한 선물을, 무덤덤하게 건네보자.


비록 '납치극'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남자도 여자처럼 상대의 배려 속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받길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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