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인문학 수업>을 읽으며

존중이라는 이름의 행성

by 은수달


"이모는 몇 살이야?"

"이모는 왜 혼자 살아?"


어느 날, 여섯 살짜리 막내 조카가 불쑥 물었다.


가끔 본가에서 같이 놀다가 집에 가겠다고 하면 "이모는 왜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안 살아?"라고 묻곤 한다.




어느 초등학교 학생들이 아파트 평수나 부모님의 직업, 소유한 차종 등으로 구별 짓기를 한다는 얘길 들었다. 나의 조카들만은 예외이길 바랐지만, 조카들 역시 그런 문화에 자연스레 젖어드나 보다.


존중 행성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취미가 뭔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어떤 반려동물을 키우는지, 이번 여름에 휴가는 어디로 가는지 등을 묻는다.

물질적 가치가 팽배한 곳에서 정신적 가치를 지키며 홀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자존감의 요소 가운데 대인관계 능력을 우선으로 꼽는 이유도 인간의 사회적 속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존중 행성은 다르다. 어른과 아이가 서로를 존중한다. 잘못을 꾸짖을 때도 행위가 기준이 될 뿐, 인간 자체에 대한 모욕은 없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_관계>


십 년 가까이 알고 지내 친구가 있다. 얼마 전, 친구의 존재를 알게 된 어머니의 폭풍 질문이 이어졌다.

"그 친구 직업은 뭐니? 학교는 어디 나왔어? 만나면 계산은 누가 하니?"


평생 직업여성으로 살아온 어머니는 여전히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난 남녀 모두 신체적으로 건강하면 밥벌이 정도는 해야 하며, 만날 때에도 돈 계산만큼은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배웠다.


오래 같이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개인 정보나 학력, 집안 환경 등. 그러나 굳이 일부러 묻지는 않는다. 십 년 지기 친구의 출신 학교를 여전히 난 모르며,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걸 보니 '존중 행성'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지 않을까.


체구가 작은 편이라 나를 잘 모르거나 처음 본 사람들 중엔 만만하게 보거나 함부로 사적 영역을 침해한다.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갑자기 말을 놓는다거나, 지나치게 민감한 질문을 스스럼없이 던지기도 한다.


"혼자 사는데 아파트에서 살아요? 와, 집이 부자인가 봐요."

"대출받아서 전세 살아요. 오피스텔보다 관리비도 적게 들고 주차도 편하거든요."


"외제차 타고 다니네요?"

"회사에서 지원해준 거예요. 국산 중형차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연비도 좋아요."


"결혼 안 하고 계속 혼자 살 거예요? 나중에 나이 들면 외로울 텐데요."

"어차피 각오한 일이에요. 결혼보단 비혼의 장점이 많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거고요."


거주지와 소유한 차량이 상대를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는 세상에서 내가 선택한 거주지 형태나 차종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해명(?) 해야 할 때가 많다.


언제쯤이면 '존중의 문화가 없는 별'이 사라지고, 존중 행성에서 개성과 인격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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