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데 버려지는 것들

by 은수달


"지금 쓰는 냉장고랑 소파는 오래됐으니까 이사 갈 때 버리고 가자."


이사를 앞두고 나보다 더 분주한 사람이 있으니... 그분은 바로 나의 어머니!


지난번에 이사할 때도 짐 때문에 실랑이를 벌인 적 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십 년 가까이 화장대 없이 살아온 데다 티브이, 냉장고 등 가전이랑 가구도 구입한 지 십 년이 넘었다. 옷도 가구도 내구성 좋고 편리한 걸 지향하며, 오래 쓰면 정이 들어 버릴 때마다 고민하게 된다.


가죽 소파를 권유하던 어머니한테 패브릭 소파의 장점을 어필하며 구입했는데, 지금까지 편하게 사용 중이다. 티브이는 음향 때문에 소* 제품으로, 책상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맞춤 제작했다.


내 눈엔 아직 멀쩡하고 쓸만한 데 어머니 눈엔 낡고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이 많나 보다. 조카나 지인들 눈엔 예술작품으로 보이는 것들이 어머니한텐 공간만 차지하는 잡동사니 취급받는다. 그래도 괜찮다. 물건은 나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함부로 손 대거나 버리지 못하니까.


[직접 그린 작품들과 선물 받은 그림]


소파랑 에어컨만 저렴하게 팔고, 나머진 새 집에 데리고 갈 예정이다. 새 자가용, 새 집, 새 컴퓨터 등등 새로운 것들이 각광받는 시대이지만, 낡음에 대한 향수를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오래된 골목길이 지저분함 대신 낭만을 불러오듯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같은 공간이나 물건이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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