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웹툰을 본 적 있다. 주인공이 서울의 낯선 고시원 생활 속에서 타인이 만들어낸 지옥을 경험하는 미스터리를 담고 있다. 앞의 제목을 보는 순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타인은 때로 내게 도움이나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절망이나 고통을 안겨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데다 의심이 많은 편이었던 난 친구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늘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한 경계심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원치 않는 전학을 하면서 더 강해졌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는 이사와 전학은 한창 예민하던 시기의 한 소녀를 더욱 내면으로 파고들게 했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게 했다.
그러다 중학교 때 반장을 맡게 되면서 성격은 자연스레 바뀌었다. 선배들과 같이 참가한 간부 수련회에서 쉽게 지기 싫어하는 성향을 발견했으며, 타인과 협동할 필요성을 피부로 느꼈다. 특히 반별로 참가한 전국 합창대회에선 타인과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또 가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입시 전쟁을 거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보다 월등히 앞서거나 때론 비열한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걸 깨달으면서 또 다른 지옥을 맛보았다.
빚 없이는 집도, 자가용도 구입하기 어려운 세상이 왔다. 생활비나 학비가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제2 금융권에 의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왜 끊임없이 빚에 시달려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가능한 타인이나 금융권에 빚지지 말고 살자는 신조는 주택을 마련하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무너졌다. ‘돈이 돈을 낳는다.’라는 말처럼, 월급 아껴서 모은 돈으로는 투자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깨닫고 내 생에 처음으로 전세금 대출을 받았다. 초반에는 원금과 이자를 꼬박꼬박 갚는 게 부담되었지만, 이러한 생활에 익숙해지고 나니 또 다른 투자를 꿈꾸게 되었다. 최근에는 채권이나 부동산 쪽에 관심이 생겨 틈틈이 책도 읽고 관련된 정보도 모으고 있다.
점점 더 초개인주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만, 우린 여전히 누군가에게 빚을 진 채 살아간다. 그것이 마음의 빚이든, 금전적인 빚이든.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의 도움을 받고, 법적 분쟁이 생기면 변호사에게,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려면 상점이나 온라인 쇼핑몰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먹고 입고 즐기는 대부분이 타인의 손을 거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지낸다. 예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중국산 제품 없이 살아보기’라는 프로젝트를 본 적이 있다. ‘중국산’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어느 미국인이 시도했는데, 결국 중국산 제품 없이 살아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서로 성향이나 관심사는 다르지만, 가끔 만나고 선물도 주고받는 사람이 있다. 때로 서로 오해도 하고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지만,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편이 되어 준다. 그 인물은 바로 올케이다. 얼마 전에도 집들이 선물로 샤워기 필터와 바디 제품을 가져왔고, 조카랑 놀아줘서 고맙다며 틈틈이 먹을 걸 챙겨준다. 말수는 적지만 생각보다 속이 깊어서 의외로 나랑 통하는 데가 있었다. 부모님이 가끔 올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면 원래 성격이 무뚝뚝해서 그런 거라며, 그래도 자기 일에 충실하고 남동생한테 잘하는 걸 보면 기특하지 않으냐며 편을 들어주게 된다.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훨씬 더 많은데, 독불장군처럼 혼자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거나 타인을 함부로 대하면 결국 자신한테 돌아오는 것 같다.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입원했을 때 발을 동동 굴리면서도 인력을 총동원해 환자들을 돌봐주는 병원을 보면서 새삼 타인은 빚이며, 우린 서로 갚아야 할 빚을 조금씩 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