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좋아해 온 시인이 있다. 그의 필명은 이상, 본명은 김해경. 1910년에 태어나 시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이상 시, <거울>(1934년 10월 발표) 중 일부 인용함.
난해하기로 유명한 작품들이 많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심오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아서 좋다. 말장난처럼 보이는 작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작가의 가치관이나 현실에 대한 인식이 녹아들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서울의 모 대학원에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지원자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한참 순서를 기다려야 했고, 드디어 면접을 보게 되었을 때 교수님이 던진 질문 중 하나가 떠오른다.
“좋아하는 시인이 있나요?”
지원할 때 분명히 세부 전공을 ‘현대 비평’이라고 적었는데, 왜 좋아하는 시인을 물어보는지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질문에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이상 시인을 좋아합니다.”
“그럼 기억나는 작품 하나만 얘기해볼래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지만, 기억을 최대한 더듬어 작품의 한 구절을 끄집어냈다.
그렇게 진땀 흘리며 무사히 면접을 마쳤지만, 합격은 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학교 이미지 때문에 서류 전형에서 타대생도 뽑긴 하지만, 면접에서 걸러낸다고 했다. 그때야 왜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질문을 했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글쓰기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작가 지망생이 있다. 그녀는 영어 교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를 써 왔다며, 시인으로 등단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한 달에 두세 번 모여 작품을 분석하고 피드백을 해 주었다. 그리고 ‘시란 무엇인가?’ 혹은 ‘이 시대에 시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등 심오한 질문을 던져 놓고 같이 고민했다.
“본받고 싶어도 요즘 시들은 너무 난해하고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공감해요. 어려워도 그 안에 시인의 가치관이나 주제 의식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현란한 말장난들이 마치 대단한 작품인 것처럼 여겨져서 회의감이 들어요.”
그래서 고르고 고른 시인이 바로 이상(李箱)이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시인인 데다 같이 읽고 토론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단지 머릿속에서만 나온 관념적인 작품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발로 뛰며 틈틈이 녹여낸 감정들이 시라는 형태로, 암울한 현실 앞에서 경험한 좌절과 고통, 아픔들이 소설이라는 형태로 드러난 것 같다.
첫 에세이 제목을 두고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초반에는 ‘고독할 권리 꿈꿀 자유’라는 제목으로 조금씩 글을 써서 모았고, 에세이가 아닌 시집으로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속 쓰다 보니 수필이라는 형식이 더 적합했고, 제목도 좀 더 임팩트 있는 걸로 바꾸는 것이 낫겠다는 주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감성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조금 모호하게 다가온다는 ‘고독할 권리 꿈꿀 자유’는 접어두고, 기억하기 쉽되 호기심도 불러일으키는 제목을 찾아 헤맸다.
‘내 별명이 수달이니까 별명을 넣어볼까? 근데 그냥 수달이라고 하기엔 뭔가 심심하니까 응용해 볼까?’
그러다 문득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이상한 나라’라고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위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지만, 언젠가 내 작품이 유명해지면 비슷하게 조회될 거라는 야심 찬(?) 기대가 조금은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