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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라토: 보통 빠르기로

by 은수달


음악 용어 중에 모데라토(moderato)는 '보통 빠르기로, 적당히 빠르게'라는 뜻이다.



몇 년 만에 고향에 내려와서 운전대를 다시 잡기 시작했을 때 종종 아찔한 순간을 목격하곤 했다.


'교차로에서 방금 신호 바뀌었는데 뒤에서 빵빵거리네.'

'급하면 비켜가면 되는데 왜 뒤에 바짝 붙어서 오는 거지?'

'횡단보도에선 보행자 우선인데 왜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려는 거지?'


오래전, 사촌동생의 생일상을 차려주기 위해 시장에 다녀오던 고모는 횡단보도에서 마을버스에 치여 목숨을 잃을 뻔했다. 분명히 신호가 바뀌는 걸 보고 건넜는데, 버스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그대로 돌진했고, 고모는 튕겨져 나가 의식을 잃고 말았다. 운이 좋아 목숨은 건졌지만, 장애인 진단을 받아야 했다.


성격 급하기로 유명한 한국인들. 나도 같은 한국인이지만, 때와 장소는 가릴 줄 안다. 특히 운전은 나뿐만 아니라 남의 안전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두 배 더 조심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만 조심한다고 사고를 피해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고 현장을 목격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뿐더러 언제 내 일이 될지 몰라 불안해진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마음이 크거나 서두른다고 해서 연애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운전이나 음악처럼 적당한 빠르기이다. 혼자 앞서가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테고, 너무 느리면 상대가 답답하거나 불편해진다.


원래 그런 성향이라고 고집부리거나 쓸데없이 상대한테 피해 주는 대신 적당한 템포로 상대와 호흡을 맞춰가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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