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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많은 간장종지 엄마와 긍정마인드 양푼이 딸

by 은수달


"제 친구는 간장종지보다 마음의 크기가 작은 것 같아요."

"저희 엄마도요."


소심한 사람을 '간장종지'라고 일컫는 지인의 비유에 빵 터지고 말았다. 물론 당사자는 소심하게 구는, 나름의 이유가 열 가지쯤 있을 테지만.



오늘도 엄마는 사소한 일로 고민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는지, 나중엔 혈압이 오르고 두통까지 생겼다.

"계속 그것만 생각하니까 머리가 복잡하고 아픈 거예요. 어차피 지나간 일이니 털어버리고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세요."

하지만 평생 그렇게 살아온 엄마 귀에 내 말이 들어올 리가 없다. 화제를 전환하는 수밖에.


"내일 몇 시 비행기예요?"

"6시 30분. 새벽에 나가야 해."

"피곤하시겠어요."

"오늘 일찍 자야지."


간장종지 엄마를 달래는 최고의 약은 바로 격한 공감과 관심이다. 하지만 영혼 없는 리액션은 오히려 엄마를 화나거나 서운하게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진심을 실어야 한다. 40년 가까이 그렇게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엄마의 기분을 맞추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


여동생을 임신했을 때 엄마는 입덧하느라 열 달 내내 제대로 먹지 못했고, 내 손을 잡고 길을 걷다가도 멈춰 서서 헛구역질을 하곤 했다. 그런 엄마의 등을 두드려준 건 지나가던 사람도, 아버지도 아닌 바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나였단다.


학창 시절에 뛰어놀다가 다치면 엄마는 나보다 더 놀라거나 허둥대곤 했다. 남동생이 목욕탕 문에 손가락이 끼였을 때, 여동생이 실수로 동전을 삼켰을 때 엄마는 너무 놀라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단다. 몇 년 전에 아버지가 수술받고 입원해 있을 때도 엄마는 당사자보다 몇 배 더 걱정하며 잔소리를 해댔다.


"엄마, 걱정 마세요. 알아서 잘할게요."


대학생 큰딸이 난생처음 해외 연수를 간다고 했을 때, 엄마는 이민이라도 보내는 것처럼 걱정했고, 떠나는 날까지 꼭 가야 하느냐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멀리 날기 위해서는 때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딸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부모의 품을 떠나야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도.


"당신이 그렇게 걱정한다고 코로나가 피해 간대요? 각자 알아서 조심하고, 그래도 걸리면 어쩔 수 없는 거죠."

코로나 초기에 엄마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렸고, 그러한 심정은 같이 사는 아버지한테 전가되었다. 그리고 백신을 맞지 않은 난 걱정 그 자체였다.

"그러다 걸리면 지원도 못 받고, 크게 아프면 어떡하려고 그래?"

"할 수 없죠. 부작용 때문에 후회하는 것보단 나아요."


이사를 앞두고 전세금 반환 때문에 일이 꼬이자 엄마는 걱정에 붙들려 지내고 있다. 물론 집주인이 보증금을 못 돌려주겠다고 버티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해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세권 설정해두고 내용증명까지 보냈으니 우리로선 최선을 다한 것이다.


"경매 넘어가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받아내야죠."


오늘도 간장종지 엄마는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드러냈고, 양푼이 딸은 간장이 말라붙지 않도록 어르고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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