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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나한테 왜 그래?

by 은수달


"직원 한 명 연봉 올려주기로 했는데, 급여가 어떻게 되는지 계산해 봐라."


사장님의 요구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얼마 전, 노무사한테 급여 계산법을 배우긴 했지만 한두 번 적용해 본 게 전부라 갑자기 공식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연봉을 12개월로 나누면 급여총액이고, 급여총액은 기본급에 초과근무 수당을 합친 건데... 일 년 평균 209시간을 곱해주면 된다고 했었지.'


하지만 급여총액을 기준으로 역산하니 시급이 맞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가며 다시 계산하려는데, 사장님의 호통이 이어졌다.

"전에 노무사한테 배웠잖아. 근데 왜 한 번만에 못하니?"

"그때 한 번 해본 게 전부라 기억이 안 나서 그래요. 다시 해볼게요."

"나중에 신입 들어오거나 연봉 조정해야 하면 어떡할 거니?"


사장님의 얘기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급여 정산은 한 달에 한 번 하는 일인 데다 연봉 조율은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일이라 세팅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그러나 사장님은 결제를 앞두고 일을 빨리 진행 안 한다며 다그친다. 때마침 에어컨 설치하기로 한 직원이 왔는데, 급여 때문에 현장 점검을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급여를 10만 원 올려주려면 연봉을 200만 원 이상 인상해야 한다는 사실도, 생각보다 급여명세서 작성하는 일이 까다롭고 복잡하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요양급여받으면 국민연금은 어떻게 되나요? 급여는 공단에서 대신 지급했는데, 연금은 회사에서 꼬박 냈거든요."

"네? 공단에서 연금에 관한 얘긴 없었는데요?"

재작년부터 산재 때문에 치료 중인 직원이 한 명 있다.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급여 중간정산은 했지만, 국민연금보험료 납부예외신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동안 연금 꼬박 낸 거 알면 사장님 분명히 뭐라고 하실 텐데요. 그전에 방법 알아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공단에 연락해서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볼게요."


국민연금보험료 납부 예외·재개 신고 | 민원안내 및 신청 |정부 24 (gov.kr)


언젠가부터 우린 업무를 차질 없이 진행하는 것보단, 사장님한테 덜 혼나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앞뒤 정황을 제대로 들어보지 않고 화부터 내는 사장님을 상대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방법을 모르면 노무사한테 물어보거나 하면 되는데... 사장님이 좀 심한 것 같아요."

"그러게요. 옆에서 계속 다그치니까 알던 것도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입사 초기엔 텃세 부리던 차장님도 며칠 연달아 사장님한테 꾸중 듣는 모습을 보더니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퇴근할 무렵, 애삼이한테 전화가 걸려와서 본인의 사원증 행방을 물었다.

"주말에 수달이 내 짐 챙겨줬잖아요."

"그때 사원증은 못 봤는데요. 다시 찾아봐요."

잠시 후 그는 사원증을 찾았다고 했지만,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내게 따지듯 묻는 그가 야속했다.


그날 밤, 타지에 사는 친구랑 통화를 했다. 일상부터 진로 고민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뭔가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진짜 중요했으면 메모해뒀다 잊어버리기 전에 얘기하던가, 아님 중간에라도 얘기가 나왔겠지."

"그런가? 근데 너랑 얘기하고 나면 왜 항상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아마 해소되지 못한 답답함이 남아서 그런 거겠지. 근데 그건 당사자인 네가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 나도 마찬가지고."


물론 혼자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누군가한테 털어놓거나 조언을 구하는 것까진 좋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상대한테 도움을 바라거나 저절로 해결되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나 기대가 아닐까.


주위에 감정이 앞서는 유형이 많다 보니 그들의 불만이나 요구를 들어주느라 때론 지친다.


다들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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