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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Oct 18. 2023

강박증의 빛과 그림자


'분명히 어제 시계를 풀어서 여기에 뒀는데... 왜 안 보이지?'


건망증이 심한 난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습관이 있다. 같은 자리에 두지 않으면 대체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가방도 이것저것 바꿔서 사용하다 보면 물건이 섞이거나 엉뚱한 곳에 가기도 한다.


나의 오래된 강박증은 학창 시절부터 비롯되었다. 가끔 지폐를 책 속에 숨기는 버릇이 있었는데, 정작 내가 기억을 못 해 애먹은 뒤로는 지갑이나 봉투에 넣어둔다. 휴대전화도 종종 잊어버려 책상이나 테이블  등 눈에 잘 띄는 곳에 둬야 안심이 된다.


사장님은 본인의 의문이 풀릴 때까지 현상을 파고들며 원인에 집착한다. 가족부터 직원들까지 소소한 일까지 본인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


여행 전날엔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야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다. 어제도 청소기로 바닥을 밀고, 테이블이랑 식탁 위를 정리했다.


'혹시 여기 뒀나?'

어제 퇴근 후, 거실에서 곧바로 가방을 푼 기억이 떠올라 테이블 위의 잡동사니를 뒤져보았다. 예상대로 그 안에 놓여 있었다. 운동 갔다가 무심결에 두고 오진 않았는지, 사무실 책상에 풀어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책상 위의 서류도 분류해서 정해진 위치에 둬야 안심이 된다. 라벨을 붙여놓아서 웬만한 문서는 바로 찾아낼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부장님이랑 사장님 서류도 직접 정리해서 가끔 대신 찾아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원하는 서류가 있으면 내게 먼저 물어본다.


강박증 덕분에 내 삶은 좀 더 효율적이고 편리해졌다. 뭔가를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크고 작은 실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 이름이나 특징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도 기억하려 노력하니 조금은 나아졌다.


여러분의 강박증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여러분의 삶을 빛으로 이끄나요, 아니면 그림자에 머물게 만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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