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수달 Jun 04. 2024

나답게 살 권리


우리는 나 자신 외에 아무것도 될 필요가 없어요.


-김수현



사회 구성원으로서 요구받은 역할들을 해내느라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될 무렵,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장녀로 태어났다는 죄(?)로 어릴 적부터 동생들을 돌보거나 부모님 대신 집안일을 도맡아서 해야만 했다.


"이건 엄마 일이잖아요. 나도 친구들이랑 어울리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스무 살 무렵, 수업 마치고 귀가하면 기다리는 집안일과 가족들 식사 당번에 지쳐 엄마한테 소리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난 수많은 역할을 요구받았고, 그걸 완벽하게 해내는 것만이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라 착각했다.


초등학교 때는 모범생 역할을 충실히 연기했고, 사춘기 때는 입시 기계가 되도록 강요받았으며, 대학 가서는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원하는 진로를 거부하고 내가 원하는 길을 고집한 대가를 치러야 했으며, 삼십 대가 되어 고향에 내려왔을 때 공시 준비를 제안받았다. 아니, 취업할 길이 막막한 내게 그것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직을 수차례 하면서 난 점점 '생존 기계' 혹은 '워커홀릭'이 되어갔고, 우울증과 만성 소화불량, 피부염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며 나 자신을 갉아먹었다. 덕분에 남다른 성과를 이루긴 했지만, 많은 돈과 시간을 병원에 갖다 바쳐야 했다.


‘평생 이렇게 죽도록 일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니?’

언젠가부터 내 안에서 반항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미친 듯이 심리학책을 찾아 읽었다. 그동안 초자아의 목소리에 끌려다니느라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대부분 문제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어요. 어머니한테 서운하거나 원망스러웠던 기억은 없나요?”

“초등학교 때 전학을 안 간다고 했는데 제 의사도 묻지 않고 강제로 전학시켰어요. 그 뒤로 저한테 선택을 강요하는 일들이 많았어요.”


어렵게 문을 두드린 상담센터의 전문가 덕분에 내가 겪고 있는 심리적 문제나 갈등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고, ‘나다움’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다움’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내가 가진 걸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 그리고 죽을 때까지 존엄성을 지키는 것. 이 두 가지만이 나다움을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86137

매거진의 이전글 챗 GPT에게 물어본 행복의 조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