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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달 Jul 16. 2024

엄마는 외박 중


"너희 엄마 어제 친구 집에서 잤다더라."


아빠랑 같이 점심 먹으러 가는 길. 엄마 근황을 물으니 또 외박(?)했단다.


"미리 연락이나 해주지. 엄마도, 참."


꼬박꼬박 일정을 보고하던 엄마는 언젠가부터 아빠한테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해, 아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본인한테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 일은 직원들한테 맡기고 엄마도 이젠 맘 편하게 쉬면서 여행도 좀 다니세요. 걱정한다고 매출이 오르는 건 아니잖아요."


평생 워킹맘이자 사업가로 살아온 엄마는 매출이 조금만 떨어지거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잠도 못 자고 죄 없는 아빠를 괴롭혔다.


"이번 주말에 콘도 예약했는데, 오후 4시까지 결제 안 하면 취소된다더라."


점심 먹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걸려 온 엄마의 연락에 주말 일정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홈페이지에 예약 내역 조회가 안 되어서 고객 센터에 전화해서 문제를 해결했고, 엄마는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평생 가족과 회사를 위해 살아왔으니 이젠 본인의 인생을 즐길 때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늦은 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리에 힘 있을 때, 기운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여행도 가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걸, 최근 들어 외박을 즐기는(?) 엄마를 보면서 깨닫고 있다.


나도 엄마를 닮아서 일이 우선이 될 때가 많지만,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일주일 중 하루는 마음 가는 대로 하는 Off Day로 정했다. 귀찮은 연락이나 업무는 잠시 미뤄두고, 커피 마시며 책도 읽고 바깥 경치도 구경하는 그런 날.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는 시간. 


어쩌면 엄마도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골치 아픈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나이 들어간다는 서글픔도 주머니 속에 넣어두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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