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동생들과 자취하려고 이사한 적이 있다. 지하철역에서 십여 분 거리에 위치한 그곳은 방향만 대강 알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운동신경은 뛰어나지만 방향감각이 둔했던 남동생은 새 집을 찾아 헤매다 결국 내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운전을 십 년 넘게 한 남사친 역시 방향치가 집안 내력이다. 네비를 제대로 읽지 못해 옆에 탈 때마다 알려줘야 하고, 조금이라도 복잡한 길은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주거나 직접 데리러 가야 했다.
그러나 나도 한 때는 방향치였고, 초보운전 시절에는 길을 잘못 빠져 서울 시내에서 일산까지 간 적도 있다. 못하는 것도 연습하면 는다고 했던가. 네비 없이 지도랑 표지판만 믿고 운전하다 보니 어느새 방향 감각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도 보는 법도 익혔다. 이젠 가끔 네비가 헤매도 대강 방향을 짐작해 길을 찾기도 하고, 몇 번 가본 길은 눈에 익혀 네비 없이도 갈 수 있다.
문현동, 사상, 주례, 하단, 명지, 양정, 온천장, 사직동, 센텀, 삼성동, 둔촌동, 이촌동... 지금까지 살아 본 동네 이름이다.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니 출구부터 갈아타는 곳까지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수도권 2호선은 순환선이라 잘못 타면 한 바퀴 돌 수도 있고, 5호선은 양 방향으로 갈라지는 곳이 있어서 타기 전에 목적지를 분명히 봐 두어야 한다.
호주에서 어학연수하던 시절, 홈스테이로 향하는 길이 헷갈려 한 시간 가까이 헤맨 적이 있다. 고층빌딩이 없는 한적한 주택가인 데다 날도 어둑해져 결국 근처 주유소에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직원은 지도를 봐도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 공중전화가 있어서 집으로 전화를 거니, 호스트 남자 친구가 대신 받았다.
"집에 가는 길을 잃어서 주유소에 들렀어요. 근데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좌초 지종을 얘기하자 그는 데리러 오겠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외국에 나갈 때도 혹시나 길을 잃을 경우를 대비해 관련된 표현을 익혀두고, 숙소랑 멀어질 땐 근처 건물이나 간판을 눈에 담아둔다.
방향치라 버스나 지하철을 잘못 타는 일이 많았던 수달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줄 정도로 능숙해졌다. 길을 잃었다고 겁먹거나 당황하지 말자.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찾거나 도움을 구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