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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파도가 닿는 미래

by 은수달


기술 발전으로 세상이 멸망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온실가스 수치는 아슬아슬하게 결정적 지점 아래로 유지되었고, 핵무기는 서로를 흐린 눈으로 노려보는 이상한 대치 상태 속에서 먼지로 코팅되어 갔으며, 로봇들은 언제까지나 인간을 위해 일했다. (중략) 인간이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척추는 머리와 몸 사이에 신호를 전달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기술 발전으로 터지고 이탈하는 건 오직 나 같은 사람들, 아마추어뿐이다.


-서윤빈, <파도가 닿는 미래>, 11쪽


어렸을 적에 기술 발전으로 삶이 더욱 편리해진 미래를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 때문에 소외되거나 도태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문명에 길들여져 존재의 이유를 잃어가는 사람도 증가하는 것 같다.


서윤빈 소설집 <파도가 닿는 미래>는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는 인간이 불안함 속에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8편의 소설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감각적인 문체와 개성 있는 캐릭터를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나는 사랑에 관해서라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애당초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낯설었다. 내게 사랑이란 단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정체불명의 무언가일 뿐이었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자랐기에 놀리는 동기들이나 놀림받는 나나 아는 게 거기서 거기였다. (위의 책, <루나>, 62-63쪽)


우주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해녀를 통해 흔들리는 정체성을 탐색하는 여정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재고해 보게 만든다. 자신의 근원도 모른 채 떠돈다면 존재의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온갖 편법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시대에 살아남고 쉽게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면, 희망이라는 파도가 미래에 닿으려면,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 찾아가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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