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갈아 넣은 나날들
나는 학부 때에 그다지 특출 난 학생이 아니었다. 학과에서 디자인에 열정을 불태우거나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소수의 학생들과 나는 결이 달랐다. 오히려 대외활동에 훨씬 관심이 많고, 학교 밖 새로운 것들에 눈을 빼앗기곤 했다. 당시 유행하던 소위 ‘스펙 쌓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설계실에만 박혀있기엔 학교 밖에 나를 가슴 뛰게 하는 것들이 많아서였다.
그런 내가 유학을 위한 포트폴리오 준비를 시작했다. 게다가 조경 디자인으로 최고의 학교들을 넘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디자인으로 정점을 찍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했다. 내가 기존에 했던 작업들은 이미 6년 전의 것들이었고, 다시 보니 그 수준이 정말 형편없어 부끄러울 정도였다. 갈 길이 까마득하게 멀게 느껴졌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 뜯어고쳐야 했다. 기존에 했던 프로젝트들의 주제만 그대로 둔 채 모든 작업을 다시 하는 것은, 희미한 기억과 흔적을 더듬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고된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학교 다닐 때는 그저 시켜서 하던 작업들이, 스스로 절박한 목표를 가지고 다시 마주하니 이상하게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그래픽 툴 활용 능력은 형편없이 녹슬어 있었고, 한정된 시간 내에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GRE 공부도 병행하고 있던 터라 시간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결국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또 다른 귀인이었다. 조경 디자인으로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분이었는데, 툴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했다. 내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밤 10시 반이 되어서야 교대역 앞 24시간 카페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지만, 그는 시간과 장소 모두 개의치 않는다며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그는 나의 녹슨 툴 실력을 단기간에 향상했고, 실질적인 조언과 유용한 팁들을 아낌없이 공유해 주었다. 포트폴리오 전반에 대한 크리틱도 거침없었으며, 만날 때마다 던지는 그의 첫마디는 늘 “저번에 얘기한 거 다 했어요?”였다. 단 한 번의 잡담도 없었다. 그저 작업에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새벽 한 시, 때때로 두 시쯤에 그가 떠나고 나면, 나는 그 카페에 홀로 남아 노트북을 붙들고 씨름했다. 그러다 가끔은 뜨는 해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의 헌신이 너무나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나를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걸까. 내가 뭐라고,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그런데 대체 나를 왜?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지? 내가 뭐라고. 나라는 사람을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마지막 날 즈음에 넌지시 물어봤다. "왜 저를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는 거예요?" 그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한때 유학 가서 더 넓은 물에서 조경을 배우고 싶었어요.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결국 꿈을 접었지만. 우리 분야가 아직 작잖아요. 유학들도 많이 가고 좋은 인재들이 많이 나와서 업계 전체가 발전하고, 우리나라 조경이 더 나아졌으면 해요. 나중에 꼭 성공해서 인터뷰에서 제 이름 한 번만 언급해 줘요, 하하." 그의 농담 섞인 말에 가슴 한구석이 찡했다. 아직 성공하지 못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잊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독과 싸우며 새벽까지 홀로 작업을 이어가던 나날들 속에도, 아주 작은 위안은 있었다. 그 당시 교대 앞 단골 카페에는 새벽 두 세시가 되면 모두들 떠나갔지만, 매일같이 늘 자리를 지키는 새벽의 동지들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 늘 무언가에 몰두하던 세 사람. 한 분은 작가인 듯했고, 다른 한 분은 스타트업 대표 같았다. 서로 말 한마디 건넨 적 없었지만, 서로의 존재에서 보이지 않는 끈끈한 연대감을 느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게 좋았고, 괜스레 응원이 되었다. 싸늘한 새벽 공기가 점차 감돌 때,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창 작업에 몰두하다 문득 깨달은 사실인데, 참 신기하게도 그 오랜 시간 카페에 머무르면서 단 한 번도 딴짓을 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었지만, 어쩌면 그럴 마음의 틈조차 없었던 것 같다. 딴짓할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쓰거나, 선 하나라도 더 그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마 고3 때 이렇게 공부했다면 의대를 갔을 텐데.)
지난 화에서 SOP 작성에 큰 도움을 주었던 그 친구는 추천서 작성에도 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추천서 역시 단순 요청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특정 주제에 맞춰 써주시길 부탁드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임을 배웠다. 전략이 중요했다. 포트폴리오, SOP, 추천서 등 모든 지원 서류의 내용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이야기로 연결되어야 했다. 지원서 전체를 꿰뚫는 일관된 주제 의식, 나만의 핵심 서사가 필요했고, 그것은 온전히 나에게서 나와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되어야 했다. 꾸며낸 이야기가 세계 최고의 학교에 지원하는 전 세계 인재들의 진정성 있는 서사를 이길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SOP에서 다듬고 또 다듬었던 나의 성장 스토리가 포트폴리오의 전반적인 구성과 추천서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보통 지원서에는 추천인의 이메일 주소를 기입하고, 추천인이 해당 이메일로 발송된 링크를 통해 직접 추천서를 업로드하는 방식이다. 지원자는 추천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고, 제출 여부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추천서의 최종 내용은 어디까지나 작성자의 몫이다. 하지만 어떤 내용을 중점적으로 쓸지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작성자도 훨씬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다. 전혀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면 작성자들도 최대한 지원자의 의도를 반영해 주려 노력해 주신다. 졸업 후 회사 경력이 6년에 가까워졌기에, 추천서 세 장 중 두 장은 회사 관계자분들께 받는 것이 현실적이라 판단했다. 한 부는 현장에서 인턴 시절부터 나를 지켜보고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던 현장소장님께, 다른 한 부는 본사 직속 상사께 부탁드렸고, 두 분 모두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그리고 남은 한 장은 모교 교수님께 부탁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니만큼 학문적 추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약 일 년 전, 졸업작품 지도교수님께서 우리 회사로 특강을 오셨을 때 인사를 드렸던 터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기막힌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6년간 한 번도 따로 연락드린 적 없던 나를 기억조차 못 하셨을지 모른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학과에서 설계로 특출 난 학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연락드렸고, 다행히 교수님께서도 흔쾌히 추천서를 써주시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세 분의 귀한 추천서를 확보하게 되었다.
막상 모든 내용을 준비했다고 생각했을 때, 진짜 복병은 따로 있었다. 학교마다 요구하는 포트폴리오의 포맷이나 용량, 페이지 수가 제각각이었고, 커버레터도 빠짐없이 작성해야 했으며, 포트폴리오와 지원서에 들어가는 학교 이름도 일일이 수정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과를 위해 각 학교의 특성에 맞춰 포트폴리오 내용과 구성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정해진 규격에 맞춰 레이아웃을 수정하고, 고품질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학교별 용량 제한을 넘지 않기 위해 이미지 파일 하나하나 용량을 확인해 가며 최적화했다. 내 컴퓨터에는 “Portfolio_final_final_real_final_최종_진짜최종.pdf” 같은 파일명이 수십 개씩 쌓여갔다. 제출 마감 직전까지 눈이 빠지도록 보고 또 보며 마지막 검토를 거듭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고, 마침내 지원서 제출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