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지만,
일명 ‘다꾸’ - 다이어리 꾸미기에는 정말로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 필기구나 형식에 얽매이지 말자고 결심하고 시작했다.
사람인지라, 기왕 매일 들춰보는거 예뻤으면 좋겠고 온갖 불렛저널 사용팁 같은 영상이나 포스팅을 찾아보면 주눅이 들고는 한다.
일기장 혹은 플래너 앱이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심플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앱 추천을 찾아 헤맨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라는 말은 흔히 사용하는 말이지만 인생상점이라는 불렛저널 노트 판매자의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나 저는 장인이 아니니까요. 도구를 탓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걸보니 나름 그쪽에는 전문가들도 도구를 가리는가보다. 그러니 나와 같은 일반인(?)이 자신의 불렛저널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싶은건 당연하겠지.
https://youtu.be/Z241_Asa2T0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플래너와 메모 등을 결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찾다가 ‘네오스마트펜’이라는 것을 알고 중고로 구입해서 사용해보았다. 불렛저널과는 별개로 고민하고 선택한 것이었는데 어쩌다가 불렛저널에 활용하게 되었고 두 달 간 중고구매비용은 건졌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사용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결합한 도구로 광고를 하고 있고 실제로 열심히 사용하는 사람도 꽤 많지만, 스마트노트와 스마트펜으로만 기록해야 데이터가 된다는 점이 아쉬웠고 그 자료도 바로바로 써먹는 느낌보다는 백업의 느낌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사용할 때 앱을 실행하고 있으면 작성하는 글씨가 바로 연동이 되지만 평소에 수첩을 작성할 때마다 앱을 연동하지는 않기 때문에 펜에 내장되어 있는 메모리공간에 저장된다. 그러고 나중에 앱을 실행시켜 데이터를 불러오는 것인데,
앱을 실행해서 노트를 불러오기까지 로딩이 오래걸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나중에 그 데이터를 이미지로 저장하거나 2차 활용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글쎄, 그렇게 호환성이 좋지 않은 앱 구동상태에서 그렇게까지 할거면 그냥 아이패드를 쓰고 말지.
나는 어쨌거나 아이패드 혹은 디지털 기록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즉각적인 기록의 효과를 인정했기에 불렛저널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사실은 어제, 오늘 불렛저널을 셋업하다가 이렇게 활용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또 한번의 고뇌의 시간을 맞이하며 어마어마한 검색과 고민을 거듭했다. 절대 나와는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노션 활용 영상도 수십 개를 돌려보고 아이패드 미니 신제품 발표 이후 계속 뽕이 빠지지 않고 있는 ‘아이패드 사고 싶어 병’에 걸려있는 채로 온갖 패드 플래너 활용기를 샅샅이 훑었다.
온갖 잡동사니를 적고 있는 수첩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분명 오프라인 기록의 단점(검색에 취약함)은 존재하기에 나름의 구분과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한게 마스킹테이프와 다이소 견출스티커와 같은 아이템 활용이었다. 나와 같은 똥손에게, 마스킹테이프는 나름 훌륭한 변명같은 도구가 되어주었고 나름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었는데,
내년 초부터 사용할 새로운 불렛저널을 주문해서 한페이지 한페이지 셋업을 하면서 솔직히, 예쁘게 꾸미고 싶고 예쁘게 활용하고 싶은 욕심을 누르지 못했다.
스마트펜 충전이 안되고 마침 펜심 잉크도 떨어졌길래 과감하게 폐기하고(a/s를 받으면 고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어차피 중고로 구매했고 더이상의 미련이 없었다.), 10년 넘에 애용하는 볼펜(메이드 인 재팬 브랜드라 언급하기 애매하지만 센스는 없으면서 쓸데없이 예민한 편이라 그래서 스마트펜 적응이 힘들기도 했었다)으로 동글동글 열심히 작성하고 있었는데
왜 또 필기구 영상을 보기 시작했는지,
https://youtu.be/y64coLD3J34
볼펜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집 앞 문구점에서 온갖 볼펜을 불렛저널 빈페이지에 테스팅하면서 고민했는데 피그먼트 잉크 펜을 써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좋네. 좋아.
스테들러 피그먼트까지는 아니고 문구점에 있는 펜, 마일드 형광펜, 온라인으로 한 개 두 개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 마스킹테이프와 인덱스… 이렇게 불렛저널에 진심이 되어버리면 곤란한데;
네오스마트펜 플래너가 한정 제품인 만큼 표지 가죽도 종이도 나쁘지 않아서 잘 사용하고 있었지만 줄노트로만 계속 써오다가 도트가 찍힌 두툼한 종이를 넘기면서 이제서야 제대로 된 불렛저널을 시작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어차피 쓰는건 비슷한데 아무렇게나 적어도 부담이 없었던 노트에서 정말로 나만의 저널링을 시작해야 하는 느낌이랄까.
1년에 세 네 권 정도 생산해야 하는 볼륨감이 부담스러워 디지털 전환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닌데, 엊그제 책장 정리를 하면서 10년 전 쓰고 보관하고 있었던 다이어리들을 모두 버렸다. 살짝 들춰보니 추억이고 그때도 나름 일정관리에 진심이었구나- 회상할 수 있었지만 그런 기록들은 그냥 데이터에 불과하니까. 보존기한이 지난 것들은 과감히 폐기하기로 결심했다.
회사에서 매년 나눠주는 업무 수첩도 나는 연말에 무조건 버려버린다. 정말로 중요한 기록이라면 사진을 찍던가 2차 가공을 거치는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불렛저널도 사실은 그래서 고민이다. 컬렉션 페이지들만 사진을 찍어놓을까 싶기는 한데 그 사진관리도 만만치 않으니…
그리고 오늘은 미루고 미뤘던 블로그의 육아, 성장일기 백업을 끝냈다.
사진과 하루하루를 연결해서 작성하고 싶은 욕심은 아직도 있지만(큰아이는 돌까지 싸이월드 앱을 통해 매일매일 일기를 썼고 출판도 했다.), 이제 도저히 그럴 시간은 없다는 것은 아니까 저널링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수행해야 할 다양한 역할들을 모두 다 잘 챙겨나가는데 더 매진해야 할 것 같다.
바쁜 워킹맘이 형식과 방법에 구애받지 않는 저널링 사용 후기를 적어보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형식과 방법을 쫓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심경만 변명처럼 늘어놓은 것 같다.
이번 달에 사실 외상은 없는 접촉사고였지만 야근하고 급하게 퇴근하던 길에 교통사고도 냈고, 벼락치기로 실기시험 응시를 했지만 불합격 소식도 이어졌고, 평일에는 아이들 얼굴 한 시간 볼까말까 한 과중한 업무로 방전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버티는게 아니라 조금이나마 알차고 즐겁게 보내고 싶었고 모처럼의 휴일에 한숨 돌리면서 주변 정리를 해나가고 있다.
불렛저널과 관련한 글은 아마 내년 초 쯤 새로운 불렛저널 셋업(얼마나 다꾸를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였는가-)를 들고 오는 정도에서 마무리를 할 것 같다.
새로운 목표와, 갑자기 이야기하고 싶은 무언가의 이야기를 들고 나만의 브런치를 열어나갈 예정이다.
베로니카, 즐겁게 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