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시작되고 좀 지난 금요일, 문득 난임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횟수로 결혼 6년차에 맞이한 우리였다.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라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갖고 싶다고 자연스럽게 생각을 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임신에 대해서 기대를 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일에 대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어서 우선 사는 것에 몰두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가 2년전, 코로나 시기에 우연히 자연임신이 되었지만 7-8주쯤에 계류유산을 하고 말았다. 그 당시 가장 일적으로 힘들었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없었던 시기였던 지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떠나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다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산부인과 진료에서 고위험(?)에 속하는 만 나이가 지나가버렸고, 그렇게 스트레스 받았던 일과도 이별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난임병원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었고, 바로 시술을 진행하는 것보다 혹시나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렇게 병원을 찾았다.
첫 번째 진료에서 나이와 혼인기간, 지난 유산의 경험을 빌미로 시험관 시술을 바로 권유 했고, 그냥 이렇게 된 거 한번은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액검사, 나팔관조영술을 거쳐 네 번째 진료에서 난임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지난 2년전 임신에서 산부인과에서 '물혹'이라고 말했던 것은 '자궁내막증'이었고, 사이즈가 제법 컸다. 난임병원의 의사는 이것이 원인이 되었을수도 있다고 했다. 단기요법이 아닌 장기요법으로 진행이 된다고 했다.
나는 어디 병원을 찾아가든 의사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편이었고, 궁금한 사항도 많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 난임병원은 다른 느낌이었다. 수많은 난임부부의 시술이 담겨진 글과는 나의 상황은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정말 사람마다 다 다른 방식대로 진행되는 시술이었다.
시술을 시작 하기 전, 한번의 자연임신을 유도하는 배란유도제를 처방받고 정확히 첫 진료를 시작한지 두달만에 제대로된 시험관 시술 단계가 시작되었다. 블로그나 유튜브 등에서 과배란 주사인 '고날프엔' (자가주사) 또한 나도 시작되었다. 또한 고날프엔과 함께 자궁내막이 커지지 않도록 처방해주는건가? '로렐린' 또한 같이 자가 주사에 대한 처방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자가 주사가 무섭다고 했었는데 원채 아픈거에 덤덤한 편인지 몰라도 그냥 아무렇지 않았다. 해야한다는 생각만 들었고, 원래 몸도 마른 편은 아니여서 배에 피하지방에 놓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그렇게 패턴은 이어져갔다.
그리고 5월 중순, 난자채취가 결정되었다. 분명 짧은 수면마취가 이루어졌고 (나는 생각보다 마취가 안드는 편이다. 나의 기억은 없지만 온전히 깨어있는 것처럼 반응한다고 한다) 그렇게 휘리릭 시간은 지나갔다. 중간중간 초음파로 난포가 자라는 것을 보았지만 실제 채취할 땐 유착이 심해서 (왜 유착이 심한지는 모르겠다. 설명을 안해줘서) 3개의 난자밖에 채취하지 못했다.
인터넷상에서는 3일 배양 또는 5일 배양으로 이루어지나 내가 난자를 채취한 날은 목요일이라서 2일 배양 후에 토요일에 바로 이식이 되었다. 이식은 마취도 하지 않고 바로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폰을 들고 가면 배아도 사진 찍어주는데 사실 이걸 사진 찍어서 뭐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정이 이루어진 배아라는 건 알겠지만 그래서.. 뭐..
채취/이식 후에는 복수가 많이 차오를 수 있다고 이온음료를 많이 마시라고 했다. 평소에도 물을 잘 마시는 편이라 이온음료를 마시는게 어렵지 않을꺼라 생각했는데 이온음료를 마시는 속도보다 복수가 차오르는 시간이 더 빨랐던 것 같다. 막달 임산부처럼 배가 부풀러 올랐고, 숨을 쉬는 것도 벅찬 느낌이었다. 더불어 허리가 아파왔고, 등 쪽으로 담이 걸려서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복수가 차올랐던 이 2주의 시간이었다. 불필요하게 이동을 해야할 때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고, 걸음도 최소로 걸었고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 집에서 본의아니게 계속적으로 누워있게 되었다.
그렇게 2주 후, 병원을 방문하기 전에 집에 유일하게 1개 남아있었더 임신 테스트기가 있었던 지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도를 해보았고, 두줄을 보게 되었다. 늘 그동안 한줄로 버려진 임신 테스트기가 익숙해져서 약간 당황하긴 했다. 그래 착상은 되었구나.. 다행이다.
병원 방문 후 1차 피검사가 진행되었다. 수치가 '10'을 넘으면 임신이라고는 했고, 대부분 임신이면 '100'정도가 된다고 한다. 나의 숫자는 '23'이었다. 임신이 되긴 했지만 엄청나게 안정(?)이라고는 할 수 없는 숫자였고, 일주일 후 다시 2차 피검사가 이루어졌다. 일주일이 지났기 때문에 엄청나게 숫자는 상승해야하지만 나의 숫자는 '60'이었다.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안정할 수 없는 숫자였고, 의사는 착상은 되었지만 화학적 유산이 진행될 수도 있다며 '질정' 등 모든 약을 중단하라고 권유했다. 그제야 나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받아드리기 시작했다. 착상도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 일단 나는 착상이 되어봤으니까 다음엔 (어쩌면) 잘 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수치가 떨어지길 예상하면서 이루어졌던 일주일 후 3차 피검해서 반전이 일어났다. 수치가 '600'이 나온 것이다. 급하게 병원은 바로 다음날 방문을 권유했고, 그 방문에서 초음파로 아기집과 태아의 심장이 반짝거리는 것을 확인했다. 의사도 당황하고 간호사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하는 순간이었다. 근 3주 동안 어찌나 파도를 치는 순간이었는 지.. 의사는 다시 '질정' 처방을 내렸고, 의사도 자기가 무얼 놓쳤는지, 아닌지 계속 확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인 - 평범한 상황은 아니였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 후 초음파를 봤을때 여전히 태아의 심장은 반짝거렸으나, 문제가 생겼다. 아기집이 너무 작은 편이었고, 심장속도가 평균 주차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었다. 2년전, 유산 과정이 딱 이 시기였기에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는 모르지만 2년 전 그 아이보다 이 아이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아주 실날같은 희망을 가졌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태였다.
좀 더 지켜보기 위해서 3일 후에 다시 초음파를 보았고, 심장은 더 많이 뛰고 있었고 여전히 아기집은 작은 편이었다. 여유공간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 자라고 있는 태아를 보면서 희망이라는 것을 갖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초음파 동영상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에 비하면 훨씬 뒤늦인 9주가 되어서야 임신확인서를 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난임병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집근처 산부인과 병원으로 전원을 했고 처음 만나는 의사와 첫 진료에서, 첫 초음파에서 아이의 심장은 멎어있었다. 난임병원에서 병원까지 딱 일주일 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 사이에 그렇게 나는 또 계류유산을 맞이했다.
2년 전, 그 아이에 비하면 이 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젤리곰 크기였다. 그래서 난임병원 마지막 방문에서 나는 희망을 가졌나보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소위 말하는 '임밍아웃'도 이루어졌는데, 소식을 전한지 일주일만에 나는 그렇게 다시 유산을 한 사람이 되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난임병원에 가면 여러가지 검사를 통해서 유산의 원인을 알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이 산부인과에서 바로 수술을 했다. 염색체 검사를 하면 유산의 원인은 알 수 있겠지만, 대부분 태아의 염색체 이상이 많고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부모의 염색체 검사에서 이상이어서 유산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계속 그 탓을 할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알고 싶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그냥 나는 외면해버렸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경험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