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일곱 그 중간 사이. 늘 평범하게 살고 싶은 나의 이야기
나는 1980년대에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에는 '자'가 들어간다. 보편적으로 한국인 이름의 글자수는 두 가지로 나는 가장 마지막 글자에 '자'가 들어간다. 1980년대생에는 흔하지 않은 이름이다. 지금껏 살면서 의무교육을 포함하여 적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 동명이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나의 이름은 '유니크'하다. 하지만 난 늘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한자의 뜻은 좋다고는 하나, 나의 나이 때의 사람들이 한문을 술술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자를 가지고 뜻을 먼저 의미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런 시대에 나는 태어나 해당 이름을 가졌고 그렇게 자라났다. 소위 말하는 매스미디어, 매체에서 이름에 '자'가 들어가는 건 쉽사리 나이가 지긋한 여성의 흔하디 흔한 이름의 돌림자일 뿐이다. 현재, 나의 이름을 지어준 그이는 이 세상에 없어 왜 이름을 이렇게 지었는지 물어볼 수 없지만 난 늘 이름이 부끄러웠고 현재까지도 나는 이름을 잘 밝히지 않는다. 나이가 든 지금 법적으로 정의된 그가 지어준 이름보다 내가 스스로 정의한 닉네임 같은 '이름'으로 나는 더 많이 불려지고 있다.
어린 시절 나라고 부모한테 투정을 부리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우리 부모세대는 이런 곳에서는 쓸데없는 유교사상이 베어버린 것처럼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식으로 답을 해왔다. 사춘기 시절 언제쯤이었을까? 아니면 이름이 촌스럽다고 느꼈던 더 어린 시절이었을까? 엄마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도 맘에 들진 않았어. 근데 할아버지가 지어준 거니 어쩔 수 없었지.' 대놓고 반항기는 없었지만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그 시절엔 엄마의 답변도 그렇게 명백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부모는 잘만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부모랑 마찰이 있어도 자신의 아이의 입장에서 선택하던데, 우리 엄마/아빠는 참 그런 것이 없었다. 당신 세대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느낌의 이름이니까. 그리고 제법 어릴 땐 지금처럼 개명이 쉬운 법적조치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것 같다. 분명 나의 기억 속의 나는 쾌활하고 인싸였는데, 점점 이름을 말하기 싫으니 사람들과 만나기가 싫었고 점점 스스로에게 다른 이름을 지어주면서 살아갔다. 여전히 나는 삼십 년을 넘게 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어도 나의 이름에 적응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꼭 나를 성까지 붙여서 이름을 불렀다. 할머니는 다른 성씨였지만, 결국 ○씨 집안이라고 말하는 우리 집에서 엄마들(엄마, 작은엄마들, 할머니 등)을 빼곤 다 같은 성인데 할머니는 꼭 나만 '성'과 '이름'의 조합으로 불렀다. 머리가 크고 나선 할머니한테 약간의 짜증도 냈다. 분명 다 같은 성을 가지고 있는데 왜 나는 세 글자로 이름이 불려져야 하는 걸까? 그래서 더더욱 이름이 싫어졌다. 이름을 이렇게 지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미워했다. 점점 나로부터 '이름'은 지워나갔다.
한 때는 이름을 지어준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때 개명을 생각했었다. 나의 부모의 발언대로라면 차라리 이름을 지어준 그가 없었을 때, 개명을 하는 게 가장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라는 건 누군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는 내가 삼십 대의 삶이 익숙해졌을 때쯤 세상과 눈을 감았다. 그러고 보니 너무 늦은 느낌이었다. 백세인생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60을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인생의 절반 넘게 그가 지어준 이름으로 모든 법적 효력을 이행해 가면서 살아왔다. 단지, 법이 접촉하지 않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 나는 내가 나에게 지어준 이름으로 살아왔을 뿐이다. 어쩌면 나는 포기라는 걸 해버린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개명에 대해서 그 시점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는데, 나이가 들고 그 일이 현실이 되고 나니 아무것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공공기관을 방문하거나 행정적인 처리, 혹은 병원을 갈 때는 잘만 그가 지어준 이름을 적는다. 어쨌든 법적으로 정의된 나의 이름이니까. 근데 이상하리만큼 누군가의 입, 나의 입 등 구두로 이름이 거론되었을 때는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다. 아마도, 어릴 적 혹은 스무 살쯤 이름을 말했을 때 '쑥덕'거리는 그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아서 그런 게 상처로 남아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전히 이름을 말하는 게 어렵고, 이름을 말하면 내 나이 때에는 흔하지 않은 이름이니 상대방은 틀리게 알아듣고 다시 반문한다. 아마도 그 이름이 아닐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그래서 늘 평범하게 사는 걸 원했었다. 이름도 평범하게, 삶도 무난하고 무던하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나날들과 그런 하루하루를 어느 순간부터 동경을 해왔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보면 사건(?)이 없는 삶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냥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그렇게 평범하게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 연장선에서 '이름'은 나에게 잊혀야만 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애증의 관계인 걸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