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에서>, 천상병
주막에서
도끼가 내 목을 찍은 그 훨신전에 내 안에서 죽어간
즐거운 아기를 - 장 쥬네
골목에서 골목으로
저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 순하기 마련인가,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
골목 어귀에서 서툰 걸음인 양
밤은 깊어 가는데,
할머니 등 뒤에
고향의 뒷산이 솟고
그 산에는
철도 아닌 한 겨울의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산 너머
쓸쓸한 성황당 꼭대기,
그 꼭대기 위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기들은 매우 즐거운 모양이다.
한없이 즐거운 모양이다.
흐리멍텅한 눈과 몽롱함을 온전히 느끼는 감각을 상실했다. 어느샌가, 죄책감으로 남아버린 흐리멍텅함과 몽롱함의 추구. 즐거움은 어느새 소비의 영역이 되어 버렸다. 온전한 유희는 어디에 있나. 온전한 유희와 온전한 몽롱함의 감각은 어쩌다 지양의 대상이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