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마다 드로잉으로 하루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실천하고자 종이를 펼쳤다. 첫 드로잉은 무목적적인 드로잉이면 좋겠다 싶어 선을 죽 그었다. 또 선을 그었다. 어느새 며칠을 같은 종이 한 바닥에 선만 죽죽 그었다. 선을 죽죽 긋다보니 평소 그림을 그릴 때 지나쳤던 습관을 발견했다. 오른손잡이인지라 그런지, 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는 선을 긋는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선이 아래에서 위로 가는 선보다 편하다. 드로잉을 하다보면 선의 방향이 다종다양하게 오가야 할 때가 있는데, 간혹 오른쪽에서 왼쪽 또는 아래에서 위로 가는 선을 그을 때 그 불편한 감각을 우회하려고 종이를 돌리곤 했다. 며칠 동안 선만 그어보니, 불편해서 회피했던 그 감각을 결국 마주했다. 막상 마주하니 나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선의 이탈이 흥미로웠다. 내가 가고자 했던 방향은 그 방향이 아닌데 선들은 이미 휘어져 저 멀리로탈주해버리곤 했다. 흥미로움을 느낌과 동시에 나의 이성은 자유로이 탈주하는 곡선형의 선을 직선형으로 만들고자 개입했다. 처음에 떠올린 선의 형상이 직선이었기에, 직선 외의 선들은 이성에게 있어 ‘서툴고 미숙한’ 선이었기 때문이다. 탈주하는 선들은 서툴고 미숙한 선일까? 탈주하는 선들을 보니 아이들의 글씨가 떠올랐다. 구불구불하고 균일하지 않은 크기의 글자들. 그 글자들을 반듯하게 쓰도록 훈련하는 것은 마땅히 필요한 과정일까? 바른 글씨와 바른 선이라는 것이 있을까?
이성의 개입을 마주하고나니 이성이 닿지 않은, 훈련되지 않은 ‘미숙함’의 감각을 더 느껴보고 싶었다. 나의 몸에 있어 직선을 그리자는 이성적 언어에 아랑곳하지 않는/못하는 육체 그대로의 상태를 보존하고 있는 영역 중 하나는 왼손이었다. 수용 감각과 표현 감각의 불협응에서 나오는 즉흥적인 선들의 춤결은 아동의 글쓰기와 같다. 이성적 의지와 다소 떨어져 있는 반-날것의 상태. 이 선의 감각을 잃고 싶지 않다는 바람과 이 선을 훈련시키고 싶다는 욕구의 충돌이 동시에 내면에 깃든다. 능숙한 자유로움을 향하는 여정은 어떤 모양일까. 그 길에는 ‘낯섬을 감각하는 연습’의 과정이 있겠다. 익숙했던 일상을 비틀어 경험하는 행위-이를테면 매번 과일을 곁들여 먹던 오트밀을 그저 오트밀만 맛보는 것부터 안 입는 옷들을 가지고 옷의 용도가 아닌 예술의 용도로 활용해보는 것, 낯선 장르의 책을 펼쳐보는 것, 책의 글자들을 다 지워보는 행위 등-는 지금까지 마침표와 느낌표로 끝났던 통념들에 물음표와 또다른 느낌표를 제시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물음표를 던지게 하는 과정은 자신의 감각을 낯선 자리에 위치시킴으로써 자신이 자리하고 있는 현재의 공간을 다시금 경험하게 한다. 낯섬의 감각 과정은 닫히면서 열리는 자기-창조적 생의 원리를 깨닫게 한다. 그렇기에 낯섬을 감각하고(느낌표), 이에 익숙해지고(마침표), 다시 낯섬을 인지(물음표)하는 흐름의 반복은 살아있음에 대한 하나의 증명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