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사랑할 수 있기를, 이별까지도.
사랑‘하다’는 동사다. 감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사랑은 비로소 ‘하다’라는 동사 어미를 획득할 수 있다.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널 사랑해서’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명백히 사랑하는 행위가 아닌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사랑으로 가장된 가학과 피학의 행위들이다. 당신-여기서 당신은 단수일 수도 복수일 수도, 인간일 수도 비인간일 수도, 생명체일 수도 비생명체일 수도 있다- 을 사랑해서, 당신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상대방에 대한 물리적/언어적 폭력들은 사랑이 아니다. 당신을 사랑해서 때리고 해치는 것, 당신에게 모욕하는 언어들을 구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저 당신을 ‘나’에게 굴복시키고자 하는 권위적 욕망에 불과하다.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모든 걸 당신에게 맡기는 행위 또한 사랑이 아니다. 이는 당신에 대해 무지하고 우리의 관계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권위적 욕망을 내려놓고 당신과 내가 맺은 관계에 관심과 책임을 가지는 행위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것과 당신이 하고픈 대로 내버려둔 채 방치하는 것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당신에 대한 나의 무지를 드러내고, 당신에 대해 알아가고자 하는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당신을 온전히존중하면서도 당신을 방치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내가 당신을 모른다는 것을 늘 망각하지 않아야겠다. 나는 당신을 모르기에, 당신은 햇살을 그 자체를 좋아하는지 햇살에 비친 달빛을 좋아하는지, 당신의 제스처에는 어떤 패턴들이 있는지, 그 패턴들 속에 담긴 당신의 맥락은 무엇인지, 나는 당신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하다. 당신도 나에게 그렇게 다가와줄 수 있을까? 그러려면 나는 당신이 나를 더 잘 알 수 있게끔, 당신이 나를 더 잘 사랑할 수 있게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아놓아야겠다. 내가 당신을 더 잘 사랑하고 싶은 만큼, 당신도 나를 더 잘 사랑하고 싶어하고, 더 잘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당신에 대해 궁금해하는 만큼, 당신도 나를 궁금해하길. 내가 당신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만큼, 당신도 내게 당신의 무지를 드러내주길.
한 가지 난제가 있다. 내가 당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당신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질적이고도 불쾌하기까지 할 수 있는 ‘타자성’에 부딪힐 것이다. 당신은 당신, 나는 나로서가 아니라 ‘당신과 나’라는 합일된 우리를 이루어내는 과정들 속에서의 불가피한 충돌을, 그 지난한 과정을 어떻게 함께 딛고 나아갈 수 있을까? 당신의 바닥을 보고싶다고 했던 말이, 당신의 바닥을 보고나서도 유효할까. 나도 나의 바닥을 알지 못하는데,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나의 바닥 그 아래 어디에 가닿을지 모르는 지하의 바닥이 더 있을지 모르는데, 당신의 바닥을 마주할 수나 있을까. 나는 당신의 바닥을 보고싶지 않다. 당신의 바닥을 보아야만 사랑하기가 가능하다면, 나는 사랑하기를 영원히 수행하지 못할 거 같다. 아니 어쩌면 ‘바닥을 보아야만 사랑’이라고 하는 명제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바닥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저 내가 당신의 바닥을, 당신이 나의 바닥을 마주했다는 판단에 의해 착각할 뿐이다. 그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저 당신이 내게 보인 낯선 모습 또한 당신이구나 할 수 있는. 동시에 나는 가학도 피학도 아닌 방식으로 당신에게 나의 새로운 모습들을 어떻게 보일 수 있을까. 나도 마주하고 싶지 않는 내 안에 잠재된 가학의 욕망과 피학의 욕망을 당신에게 어떻게 사랑하는 방식으로 가닿을 수 있을까.
또 한 가지 난제. 나는 당신과의 이별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까. 당신과의 헤어짐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가능할까. 당신에게 상처주지 않고, 당신으로부터 상처받지 않는 이별이 가능할까. 사랑-하기의 과정에서 우리는 이별-하기의 연습도 부지런히 해야 하겠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결국은 마주하게 될 우리의 이별을 위해, 천천히 사다리를 내려와 마무리할 수 있는 이별에 대한 연습을 말이다. 이별하는 순간에도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 당신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당신과의 맺었던 그간의 관계에 대해 마땅히 가졌던 관심과 책임을 이별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가지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