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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는이가 Feb 04. 2021

퇴사하고 유튜브에 사활을 건 그녀,

함정에 빠졌다. 그다음은 어디로 도망갈 것인가?

재미있어서 시작한 유튜브가 재미없어 죽겠는데도 그냥 하고 있다는 그녀, 그렇다고 새로운 시도는 두렵다고 한다.


 며칠 전 아는 유튜버가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말을 걸어왔었다.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고 몇 번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은 있었지만 친하다 할 수 없기에 새벽에 울린 그녀의 노크가 약간 긴장되었다.

그녀는 요즘 유튜브가 하기 싫어져서 죽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들인 공이 아까워서 때려치우지도 못하겠단다. 더불어 요즘 SNS 활동이 뜸한 우리 부부는 어떤 재미에 빠져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다. 늘 같은 자세로 꾸준히 활동하던 유튜버라서 그런 속 사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피아노에 입문하여 약간 들떠있고 유튜브로 역사스페셜을 시청하는데 심취해 있으며 작업할 시간에는 다른 작가의 작업을 둘러보는 중이라고 원치 않았을 답을 하며 정답을 궁리했다. 심각하게 고민 중인 그녀에게 롤 모델이나 다른 분야의 존경할 상대를 찾아보면 어떻겠냐는 패를 던져봤다. 그건 내 어린 조카에게도 해당되는 성의 없는 조언이었다. 하기 싫은 속내를 영상으로 담아보는 건 어떨지, 남에게 보이는 모습보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지... 거울 앞에 선 그녀에게 무슨 말이 제격일지 몰라서 이 말, 저 말 들이대 봤지만 나도 작업적으로 그녀와 같은 위치라 조언할 능력은 못 되었다. 아마 그이와 나도 변한 몸에 맞는 새 옷을 찾는 중 아닐까?

이번에 올린 영상 잘 봤고 힘내라는.. 안 해도 상관없는 말로 대화의 매듭을 지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진하게 커피를 내려 마셨다. 커피 한 잔을 비우니 아뿔싸, 이제야 못다 한 말이 들어찬다.

 


유튜브 채널의 중심은 그이와 나, 우리였다. 카메라는 우리의 행적과 생각을 시각화하는 도구였고 유튜브는 그것을 알리는 확성기였다. 확성기의 기능과 속성을 알면 알수록 그것이 원하는 틀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확성기의 틀에 맞춰봤더니 우리 채널의 구독자 수는 급등했었다.

... 킁킁! 이거 어디서 많이 맡아본 냄새인데?

인공지능이 만든 기준에 맞게 행동하면 구독자 수가 올라가는 생태구조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유튜브도 그토록 떨쳐내려 발버둥 쳐왔던 곳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 채널 운영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나는 유튜브에 대해 잘 모른다. 1년간 유튜브 알고리즘을 분해하고 다각도로 실험해본 그이의 의견이다.



유튜브의 알고리즘, 그 뒤에 시청자가 있다. 시청자 뒤에는 유행과 자극이 있다. 집 짓기로 떡상했으면 평생 집 짓기만 해야 하고 하우투로 떡상했으면 평생 하우투만 해야 하는 것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떡상한 내용을 밀어주기 때문이고 그것으로 모인 구독자들은 그것이 아니라면 그곳에 머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집짓기 좋아하고 쇼핑이 적성에 맞는다면, 그대의 관심사가 평생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유튜브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다행인데 그게 아니라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내 즐거움을 모른척한다면 부모님의 바람대로 사는 것과 다를 것은 뭔가? 유튜브는 내 삶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기에 유용한 매체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유튜브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도, 인공지능의 틀이 내 중심이 되는 것도 장기전에서는 별로다. 유튜브를 과정이 아닌 목적으로 여긴다면 남들을 위해 가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뒷면에는 앞면과 쌍둥이 같은 함정이 있었다. 퇴사하고 유튜브에 사활을 건 그녀, 이 함정에 빠지면 그다음은 어디로 도망갈 것인가?



재미있어서 시작한 유튜브가 재미없어 죽겠는데도 그냥 하고는 있는데 그렇다고 새로운 시도는 두렵다고 한다. 아마 시도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어렵게 올린 구독자 수를 잃기 두려운 것 이리라. 하여,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은 유지하되 새로운 시도를 조금씩 늘여가면 어떨까 했다. 유튜브가 일부 포함된 큰 그림을 다시 그려보자고 했다. 구독자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자고 했다.



그녀는 곧 그녀만의 유일무이한 뭔가를, 재미를 찾아갈 것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의문을 던질 줄 아는 그녀가 달라 보였다. 앞으로 연주될 그녀의 변주곡이 기대된다.



겨울 동안 다섯번은 옷을 바꿔 입는다는 월동 대파, 봄에 구워 먹으면 아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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