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불안에 대하여.

귀농귀촌, 할까? 말까?

by 은는이가


귀촌하고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


시골의 작은 마을에 혼자 남은 젊은 여자를 걱정하는 전화벨이 요 며칠간 아침저녁으로 울린다. 그러면 그 여자는 과하게 해맑고 활기찬 목소리로 상대를 안심시키고 화재를 서울로 돌린다.


나는 귀촌 3년 차,

텃밭을 무농약으로 키워보겠다고 덤볐다가

쫄딱 망하기 일쑤.


오늘로 혼밥 3일 차,

그이는 출장 중에 있다.

아까 그 전화벨의 발신자는 서울에 계시는 프로 걱정ㄹer 어머니. 걱정거리를 찾으시던 중에 내가 마침 잘 걸렸다.


내가 마당에 있다 하면,

괴한이 뒤에서 칼을 들고 나타나지 않는지.

현관문 앞을 어슬렁대는 자는 굶주린 모기뿐.

날 기다리는 건 수확시기 놓친 오이뿐.

나와 마주친 자는 개구리뿐.


내가 집안에 있다 하면,
뒤에 있던 괴한이 벽을 뚫고 창을 깨부수고 들이닥치지는 않는지.

맥주캔을 따고 싶은 충동이 들이닥치긴 한다.

이웃 어르신이 들고 온 채소가 들이닥치기도 한다.


티브이도 없는데 심심하지 않은지,

전국 택배와 인터넷 믿고 귀촌한 게 크다.

노트북으로 뉴스를 보려다가 옆으로 새서 박효신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자니.. 저 가수의 바디 실루엣이, 콧대가, 광대뼈가, 그이를 닮았다.

나는 북방계형 두개골에 매력을 느끼나 보다.

친구도 만나는데 외롭지 않은지,

개운한 낮잠과


매일 관람하는 하늘의 버라이어티 쑈.


하루는 무지개도 떴다.


띠용이는 뒷다리가 불편하다

말없이 옆에 있는 고양이들과


풀치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한 없이 나만 보는 개들이 있어서 외로운 건 잘 모르겠다. 늘 할 일도 많고 혼자 잘 노는 편이기도 한데 사실은 원래 친구가 없기도 하다.


마을은 마트도 없는데 굶지는 않는지.
시골은 신선 식품이 풍족하다.

농사에 게을러서 주로 얻어먹지만...

또한 온라인으로 주문 못 할 것이 없는데 돈이 없는 게 문제라면 모를까 마트 없는 게 문제랴.


물론, 위의 걱정에 대비하고 조심해야겠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밭에 나가 있으면

이따금 갑자기 등이 싸 하기도 하고

밤늦은 시각에 편의점이 아쉽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울은 각종 범죄로부터 안전한가?

대형마트에 가면 맑은 공기를 사 올 수 있나?

지금 따 온 채소를 식탁에 올릴 수 있나?


어떤 삶을 선택하든지 장단점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옳고 그름이 아닌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생기면 감정에 빠지기보다 해결에 집중하려 애써본다. 물론 잘 안되지만...

그저 조심해야 할 것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나 환상.


나의 경우, 귀농 귀촌에 관한 최신 책을 사서 읽고 왔는데 막상 실전에 투입되자 책 내용은 기억도 안 나고 지금 곱씹어 보면 적용되는 예가 별로 없었다. 그 책의 저자가 우리 마을에 살아보지 않았고 또 나와 다르므로 연애는 책으로 배울 수 없나 보다. 그저 의지가 있다면 남 얘기 듣지 말고 아무 생각도 기대도 없이 일단 행동하고 경험하는 것이 젤 빠른 길 같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가봤다가 나랑 안 맞으면 빨리 돌아오지 뭐~ 그런 마음으로..


시골은 돈으로 내 뒤처리를 대신해주는 그런 게 없다. 매달 내야 할 아파트 관리비 대신 내 몸으로 때우는 것이다. 또, 나는 내가 작물을 잘 키울 수 있을거라 착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걸 일 년 만에 인정하고 포기했다. 반대로 밭일하기 싫다던 사람이 수확의 중독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 촌놈인 그이와 나,
이민이던 귀농귀촌이던 터전을 옮기면 분명 충격이 있다. 문화충격, 세대 충격... 나는 둘 중에 세대 충격이 더 충격이었다. 물론 30년 넘게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이와 나의 가정 충격도 만만치 않지만.
충격으로 인한 충돌 속에서 올 해의 나는 작년보다 단단하고 넓어진 것 같다.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하여 투덜대긴 해도 최소한 울지는 않게 됐다.

“밖으로 나돌지 말고 살 찌워서 애나 낳지 그러냐” 하는 마을 어르신들의 충고에,

그 세대를 살아오고 여자는 그런 취급을 받아야 했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해 보게 되는데 1년 걸렸다. 주입과 억압만 살 길이었던 전쟁의 시대를 살아온 분들한테는 개인의 생각이 없는 것이 옳다. 집 짓는 외지의 젊은이를 기본적으로 기특하게 생각하고 뭐라도 하나 주려고 하시니 순수하고 착한 마음이 밑에 깔려있던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기 까지 또 1년이 필요했다.

가본 적 없는 길에서 없던 목표가 만들어졌다. 올 해는 작년보다 나은 내가 되어서 결국 멋진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 (꼰대가 되지 않을 자신은 없다.)


팔자주름과 미간의 내 천자가 흐려지고 있다.
그이가 출장 가고 없으니 웃을 일도 화낼 일도 없어서 거의 무표정으로 지낸다.


아직 남은 3일이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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