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나 Oct 20. 2024

다시 한 발자국 멀어진 사이

가족의 따뜻함에 대한 미련 그리고 나는 가족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우울증 증상과 바뀐 약의 영향인지 무기력함과 잠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몰려와 하루종일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과 동시에 나는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하던 본가 가족들과의 영상통화도 거의 2주간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득 내 연락을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을 우리 할매가 보고 싶어 몇일만에 씻고 화장도 살짝 한 뒤 엄마의 핸드폰으로 카카오톡 영상통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할매는 내 얼굴을 보며 "어데 아프나?? 밥은 먹었나? 하도 전화가 안 와서 어데 아픈가 했다~"질문들을 쏟아냈다. "아니. 아푼데 없고, 밥도 잘 챙겨 먹고 있지~ 내가 어디 가서 굶고 있겠나~?"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연락을 안 한 2주 동안 우리 할매는 폐렴으로 고생을 했다고 한다. 내가 "아프지 말라고 했드만 와 자꾸 아프고 그라노!!!"라고 화난 듯이 이야기하자 "그라게.... 그게 내 맘대로 되나~"라고 말끝을 흐리시더니 대뜸 "설 때 올거제~?"라고 물으셨고,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설 때 오긴 뭘 와~"라고 하며 핸드폰을 뺏어 드는 아빠의 모습.... 그러더니 "설 때 올 생각 하지 마라. 니 줄 돈 없다! 복직은 언제하노?" 라며 본인 할 말만 늘어놓는 아빠에게 12월에 복직하려고 했는데 병원에서는 아직 무리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짧게 대답만 했다.


2년 넘게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고, 사실은 한국에 있을 때에도 가족들 몰래 정신과 약을 먹었던 것에 대해 이번에 본가에 갔을 때 아빠에게 이야기했었다. (한국에 있을 때, 그때는 지금처럼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정신적인 문제로 병원에 가는 것은 주변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아, 한두 달 정도 가족들도 모르게 약을 먹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휴직을 하고 있고, 경제적인 상황으로 동생부부에게 200만 원을 빌린 사실과 저축금액이 없는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내가 이런 상황들에 대해 아빠에게 이야기한 것은 늘 나에게 금전적인 무언가를 요구하는 가족들에게 이제 더 이상 그 무엇도 해 줄 수 없다는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아빠는 내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것에 대해 자신의 탓이라며 미안하다고 하셨고, 동생부부에게 빌린 200만 원을 갚으라고 주셨다.

나는 이번 대화를 시작으로 조금씩 아빠와의 거리를 줄이고, 아빠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조금씩 내려놓고자 했다. 하지만 이번 전화통화로 나는 다시 아빠와 한 발자국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고 생각은 되지만 "내가 미안하다고 했는데, 니가 힘든 게 머가 있노? 정신과 약은 오래 먹는 거 아니다. 회사도 오래 쉬믄 회사에서 안 좋아하니까 빨리 복직해라. 그라고 설 때 와도 니한테 줄 돈 없으니까 오지 마라."는 아빠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30년 넘게 내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은 원망과 미움, 그리고 나 때문에....라는 죄책감과 버려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온 내 인생이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나는 경제적으로 한 번도 집에서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매월 생활비를 내야 했고, 아빠가 타고 다니는 차, 심지어 나를 낳아주지도 않은 엄마와의 결혼기념일까지도 챙겨야 했다.


일본으로 와서도 주변 친구들은 반찬이며 생활용품이며 다들 본가에서 보내줬지만 나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도 아닌데 생활비를 달라는 말도 들었다. 일본에 와서 2년 동안 전문학교를 다니며 나는 단 한 번도 본가에서 반찬 한 번 받아본 적도 없었고, 학비와 생활비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해야 했기에 정말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다. 수업이 없는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취업을 하고 본가를 갔을 때에도 단 한 번도 돈을 받은 적은 없다.


아빠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가족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할매가 돌아가시면 가족들이랑은 인연을 끊고 살겠다고 늘 말하는 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미련이 아직도 남아있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우연히 들은 노래에 오열한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