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어느땐데.
올해 초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가족과 '엘리멘탈'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결론만 말하면, 좋은 영화였고 즐긴 부분도 있었지만, 불쾌함 또한 유발했던 영화였다. 이번 글에서는, 개인적인 리뷰차원에서 어떤 점이 왜 불쾌하게 다가왔는지 얘기해보려 한다.
근데 이건 분명히 하자.
내가 이 영화가 불쾌했다고 해서 나쁜영화라고 할 수 없다. 여전히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화로 회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성'처럼 보다 전문적 시각이 가미된 기준들에 기반해 이 영화를 보더라도, 아무리 누군가 불쾌했다 한들 무조건 '불쾌함 = 낮은 작품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생각한다.
여주인공인 엠버의 가족은 5가지 자연 요소 중 '불'에 뿌리를 둔 가족이다. 세상에는 물, 불, 공기, 흙,... 등 여러 타입의 기원을 가진 존재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불' 출신 가족은 다문화 사회에 적응하는데도 불 특유의 성질 때문에 주변 캐릭터들로부터 쉽게 거부되어왔고, 때로는 인종차별을 떠올리게 만드는 실질적 거부도 받아왔다. 그래서 엠버네 가족은 같은 '불'끼리 모여사는 곳으로 옮겨 정착했고, 거기서 엠버의 아버지는 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가는데 그동안 겪은 것들 때문인건지, 어딘가 심보가 약간 꼬여있기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는 툴툴대기도 하는 면모를 보인다.
엠버는 어릴적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잘 영위시켜가는게 소위 인생의 목표였다. 아빠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들도 꾹꾹 눌러참아가며 가게운영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는 잘 되지 않았고, 그러던 와중 가게의 존폐를 결정지을 수 있는 위기를 맞닥뜨리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키우는 원인이기도 한)웨이드라는 '물' 친구를 만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가면서 비단 문제해결 뿐 아니라 엠버는 자신의 재능도 찾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는 삶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 꿈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결국은 아빠의 가게를 무사히 복구시키고, 가업은 아버지에게 맡긴 뒤 엠버는 자신만의 꿈을 좇아 웨이드와 함께 새로운 곳으로 떠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스토리도 좋았다. 영화가 품은 메시지 또한,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생각할 여지를 주기에 정말 좋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걸 이렇게나 불편하게 느낀 이유는 감독이 여러 인터뷰를 통해 어필한 내용중 하나가 바로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었는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그의 대답과는 다르게 오히려 내가 아는 실제 한국 문화나 정서, 그가 부모님으로부터 들었을 법한 한국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그러면서도 서구권이 '아시안'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업 계승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물론 스토리의 중후반부를 지나면서 주인공은 '앰버라는 독립된 존재로서 앞으로의 자신의 삶은 어때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으며, 비단 주인공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갈수록 성장하고 있었지만, 웨이드와의 가족과는 다르게 극 초반에 왜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가족 비즈니스를 위한 그 단결은 정말 공감하기도 어려웠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분명 감독은 한국계 이민가정 출신으로, 한국인 재미교포이신 부모님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는 일부 유튜브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시기를 포함해 그의 부모님이 아마도 속하지 않았을까 짐작되는 베이비 붐 시대를 감안해보면, 내가 근현대사를 공부할 때 50년대 중후반 ~ 60년대의 풍토나 정서에 비해 실제 영화에 반영된 것은 많이 달랐다.
'우리 부모님세대, 부모님의 삼촌세대가 그렇게 가업을 물려주고, 이어받는 데 열성적이셨던가?'
물론 그 때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농촌 인구나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비중이 극도로 적지 않았던 시기이며,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극빈층부터 시작해 여러 계층 및 유형의 가정이 있었을 수 있기에 그 개개인에서 오는 경험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를 보면서도 이건 한국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을 담았다고 보기에 그렇게 와닿지 않는 이유는, 그가 태어나기 전 몇년동안의 한국, 그보다 조금 더 전의 한국의 모습을 보더라도 '너는 내 자식이니 나의 가업을 이어받거라'하는 문화는 잘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과도한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일부 어그러진 모습의 풍토는 있었을지언정, 그 때 당시 이팔청춘이셨던 분들이 주역이 되었던 사건들을 보면 가업을 잇는 것과는 무관한, 도리어 '나(우리)의 자유'를 외치는 모습이나, '내가 내 젊음을 통해 이루고 싶은 일을 하는'경향이 더 강했다고 느껴진다. (그 시대에 무슨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는지는 위키를 통해 간단히 확인 겸 찾아보았다.)
물론 정확히 감독이 부모님을 통해 어떤 이야기들을 들었고, 경험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한 당시의 수십년간의 대중적 세태를 떠올려봤을 때 '저게 진짜 한국의 모습이 맞나?' 라는 의심이 들기에는 충분했다. 주변에 베이비부머 세대이신 내 또래의 부모님들을 봐도, 어릴때부터 단 한분도 '얘는 내 가업을 이을 아이다'라는 식으로 친구들을 유도하시는 어른들을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렇게 느꼈다.
그게 왜 불편감을 유발했는지를 설명하려면, 다음 2가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1. 나는 다른것은 인정하지만, 틀린 것은 참지 못한다.
특히나 나는 왜곡된 이미지나 개인에 대한 이상한 편견으로 이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인데, 이 또한 충분히 그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내 그 어떤 측면에서도 '앞으로 우리 부모님의 유산을 물려받아 내가 잘 이어나가야지'같은 생각에는 1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 교포 감독이 제작했으며 그 부모님의 이야기가 하나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저 나라이름만 들어본 사람들이나 아이돌 몇몇을 알고있는 사람정도라면 이 영화를 보고 여러가지 자신만의 인사이트도 있겠지만, 그렇다 한들외부인들은 한국사람이나 문화에 대해 그런 왜곡된 선입견을 가지기 쉽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마냥 좋지만은 않다.특히 감독이 영화 홍보에 있어 자신의 뿌리를 한국이라고 적극적으로 소개했고, 외국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또한 '한국에서 이민을 오셨던 부모님'을 언급하며 이 애니메이션의 한 축을 '이민'과 결부시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일반적'인 사실과는 꽤 거리가 있는 모습들을 '한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공통된 '인식'으로 만들 수 있는 요소는 나를 불안하고 불쾌하게 했다.
저 스토리가 그저 감독의 개인적 이야기만을 다루고자 했던 거라면, 이렇게까지 불편하진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건 비단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만들었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도만을 담은 것은 아니었던 영화로 보여 더욱 그랬다. 저런 모습은 요즘뿐 아니라, 수십년 전의 역사에서도 그런 ‘트렌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2. 그런 선입견은 한국사람들이 자유롭게 지구촌을 누비며 생활하는데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으로써 더 작용해왔다.
설령 그런 고정관념이 생기는 영화라 할지라도, 그런 류의 오래된 선입견이 아시아인들이 외국생활을 하는데 있어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오히려 이런 반감은 덜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언론/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교포로서의 고충이나, 혹은 개인 블로거들이 외국생활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것들을 보면, 직접적으로 어떤 한 고정관념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한 부당함/어려움을 겪게 했다'라고 직접 연관지을 수 없지만, 그런 크고작은 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역사적으로 차곡차곡 쌓여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이기보다 되려 부정적으로 작용한 사례를 더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이 2가지 인사이트들 때문에, 영화를 보는내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꼭 불쾌함만 느꼈던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여러가지 메시지들을 생각해보면, 어떤 면에서는 생각의 틀을 벗어나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보라는 이야기도 시나리오 구석구석 녹아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두팔 벌려 환영했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 내가 만들고 짊어져가야 할 미래까지도 두루두루 생각해보게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리고 영화중간중간 묘사되는, 물과 불의 성질이기에 나타날 수 있는 재밌는 과학적 현상들도 영화 중간중간 소소한 유머로 녹여낸 것들도, 모두 작품을 즐기기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난 웨이드가 증발했을 때도, '쟤는 존재가 없어진게 아니라 성질이 변한채로 여전히 존재하는 거 아니야? 죽은게 아닌데 왜 저렇게 슬퍼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새드엔딩은 좀처럼 용납하지 않는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 답게 웨이드는 곧 다시 기체상태의 수증기에서 액체상태의 물로 변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