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댕챱 May 10. 2024

영국까기 인형 3편 - 문화차이로, 뜻밖의 XX이 되다

이번 글에서는, 가장 최근에 있었던 황당무계한 사건을 하나 소개해보고자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느꼈던 질문 때문에, 도리어 내가 나쁜 빗-취가 되어버린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다.

사실 비단 문화차이 때문만은 아니고, 어쩌면 내가 영어활용이 능숙하지 못한 탓에, 무난히 넘어갈 수 있는 것도 마치 사람 신경을 긁었을지도 모른다. 또 여기와서 느낀(고 있는) 나의 허접한 듣기실력도 한 몫을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었든지를 떠나 이번 에피소드는 다시 잊지못할 나름의 추억이자, 근래들어 가장 황당했던 사건으로 기억할 것 같다.




몇주 전, 새로운 Head of product와 나, 그리고 HR 매니저 셋이 3자 미팅을 가졌다. 이유는 취업비자로의 전환을 위해서였다. (당장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2년밖에는 우선 지원해주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비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HR 매니저는 혹시 비자신청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물어보라는 멘트와 함께 미팅은 상큼하게 마무리가 됐다.


그렇게 몇주가 지나고, 그동안 일에만 신경을 쏟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내 메일함에 뒤늦게 비자 레터가 온 것을 확인했다. 서둘러 서명을 넣어 보내주려고 내용을 읽어보니, 스폰서십을 받는 기간 도중에 퇴사를 하게 되면, 남은 기간동안의 스폰서십 비용을 모두 나에게 청구하겠다는 내용이 나와있었다.


갑질에도 문화차이가 있는걸까.

뭐..황당하긴 했지만 사실 스폰서십은 연간 나누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일시불 형태로 정부에 지급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삼모사라고 해도 회사에는 큰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그 비용을 다 지불해줬는데, 그 돈의 가치를 모두 회수하기 전에 직원이 퇴사를 해버린다면, 회사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손해일 것이다. (사실 난 내 경우는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폰서십을 주는 조건으로 연봉이 스폰서십 기간 2년동안 강제 동결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Gov.uk 웹사이트에서 비자 관련 내용을 뒤져 봤는데, 아마도 내가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유형의 비자는 중도하차 시에도 환불이 가능한 비자였다. 비록 전액이 될거라는 생각은 안하지만, 어쨌든 얼마라도 받을 수 있는 구조인듯 했다.


그래서 HR 매니저에게, 나는 2가지에 대해 문의했다.

1. 내가 받으려는 취업비자가 혹시 내가 알고 있는 그 비자가 맞는지

2. 웹사이트에 보니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나와있었는데, 그렇다면 비자레터에 나와있는 것은 그 부분까지 감안된 청구조건인 것인지


그리고 나는 다음의 메시지를 받았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우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지금은 2년밖에 지원 못해줘. 니가 궁금한 거 확인하려면 변호사한테 문의해봐야 하는데, 혹시 확인하고 나면 뭐가 달라질까?'


어이가 없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해놓고, 이런식으로 협박아닌 협박식으로 나에게 되묻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부당함과 불쾌감을 느꼈다.

'내가 당사자인데, 뭔 비자를 받는지, 어떤 경우에 어떻게 일이 흘러가는지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는다고? 말이 돼?'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다른 영국친구에게 전후 사정을 들려주니, 그 친구는 자기가 회사 대표라면, 그리고 오퍼를 주는데도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자신 또한 비슷한 의심과 기분을 가졌을 거라고 얘기했다.


문화가 다른것으로도, 충분히 빡침은 생길 수 있구나.

한국적 정서로 본다면, 너무나 말이 안되는 내용일 것이다. 고용자와 피고용자 관계를 떠나, 법적인 성질의 일인 만큼, 한 개인이 추후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한 억울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양측 당사자가 모두 투명하게 상세한 정보를 공유하는건 내가 살아온 곳의 상식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분상하게 한게 미안하기보다, 어이가 없었다. 마땅히 내가 알아야 하는 위험요소들에 대해서 나는 명확한 답변을 요청했을 뿐이니 말이다. 물론 개인으로서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은 충분히 인정한다. 사람은 저마다 여라가지에 대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요한 정보에 대한 합당한 문의에 대해 이런식의 쏘아붙이는 답변을 받을 줄은 몰랐고, 너무 당황스러워서 처음에는 메시지를 받고 뭐라고 답신해야 할지 조차 잊은 채 어버버거렸다. 당연히 답변은 그렇지 않다고, 그저 궁금했기에 물어봤던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나의 서툰 어휘선택 센스 때문인지 그것이 잘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 저녁, 어찌저찌 친구의 도움을 받아, 정식으로 메일로 작성해 서명이 담긴 비자레터와 함께 이전 메일에 회신을 보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거니.

이렇게나 인식 자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에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실 영국을 살아오면서도 사람사는게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은 부분들이 꽤 있었던 터였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는 한층 더 영국인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고, 한번 더 실망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억울하다고 느낀다. 그럴거면 물어보라는 말 자체를 하질 말던가. 어쩌면 아직도 나의 기준은 한국의 기준에 머물러 있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요 근래 겪은 일들 중 가장 심적으로 힘들었던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무슨 비자에 지원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스폰서십을 진행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돈을 지불하고 고용하는 형태는 현재까지 조사해본 바로 T2가 유일하기 때문에, 아마 그 비자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책 전문가가 아니라서 내가 예상하는 것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마무리하면,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총 3가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1) 영국 회사에서는 회사에 질문이 있거나, 불만이 있어도 함부로 HR팀과 엮이면 안된다.
2) 정보의 형평성은 회사 마음이어도 이상하지 않으며, 개인이 추후 인지하지 못한 사실로 인해 피해를 보더라도 그건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할 것이다.

3) 영국사람들은 그 일이 아무리 중요한 사안이어도, 자신이 베푸는 것에 구체적으로 물으려드는 것을 불쾌해한다. (진짜 상꼰대스럽다...)




대체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 당위성은 1도 이해하지 못한 채, 어쨌든 정서가 그러하다 하니 이메일 한통에 4-5번이 넘는 사과표현을 사용해서 힘겹게 메일을 보냈다. 1년을 막 넘겼는데, 아마도 내 인생에서, Top 5 안에 드는 억울한 일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자괴감 다스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