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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an 04. 2021

싫어하는 사람이 고졸일 때.

나 정말 형편없구나.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더라.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그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빈도가 달라진다. 외롭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인구 수만큼 개별적이라는 차이점도 있다. 그리고 저마다 다르다는 이유로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양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사람은 너무 다양하다.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감당한다는 게 그들에게 어떤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 같지 않다. 아무튼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린 적이 있었다. 예를 들면 직장 동료와 하룻밤의 유희를 즐기는 사람, 지속적인 원나잇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사람 등이 있다.



나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같이 일하기에 무리는 없는 사람들과 한때나마 같이 일했던 적이 있다. 물론 나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은 자꾸 그 사람들을 도덕적 단죄의 대상으로 올린다. 나는 그들을 심판한다. 그들은 나쁘고 내 상식은 대중적이다. 나는 그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스로 우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멈출 수 없다. 


사람은 다양하고 , 그 다양성을 체험했던 순간도 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시기는 언제일까. 나는 이십 대 후반에 들어서야 겨우 나와 다른 삶의 양식이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제한된 조건과 상황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했던 적이 있었다. 스무 살이라는 정처 없는 시기를 넘고 한참이 흐른 이십 대 후반에 도달했을 때다. 나는 다국적 기업이자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A 브랜드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대학교 졸업 한 학기를 앞두고 우연하게 선택한 직업이었다.



그 당시 나는 첫 번째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가볍게 그 일을 선택했다. 친구들이 파트타임 직업 혹은 아르바이트라며 이야기하는 것은 불편하게 느끼면서도 나 스스로는 A 브랜드 판매직을 직업으로 여기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A브랜드 판매직으로서 살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이고 실재하는 사실이었다. 다만 나 스스로 직업으로 소개하고 싶지 않아 부정하고 싶었다. 임시직이야, 막 학기 앞두고 공부만 하기 아쉬워서 선택한 거야 라며 스스로를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일로 만난 사이는 일로 끝내야지.


그때 나는 확고한 신념 한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유효하다. 일로 만난 사람들은 일로 만났다는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의 영역과 사생활의 영역을 분리하고 그 사람들을 사생활에 연장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그건 A 브랜드여서가 아니다. 나는  일로 만난 사람은 그 범위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늘 생각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나는 볼품없는 인간이었지만 일로 만난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다.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비난하고 어울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일로 만난 사이가 아니었더라면 충분히 훌륭하거나 괜찮을지도 모른 사람인데 나는 지나치게 높은 기준으로 그 사람들을 깎아내린 것이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나만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깎아내린 채 그들을 내 삶에서 배제했다.


편견을 버리기 쉽지 않다. 고졸인 그녀에 대해서.


편견 그 자체였다. 편견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행동을 이미 정해진 편견을 잣대로 해석했다. 내가 유독 싫어했던 여자 아이가 있었다. 말을 그럴듯하지만 실속이 없다고 느껴지는 어린아이였다. 일 자체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모든 술자리에 자신이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었다. 사실 최종 학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나에게 그 아이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나만의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스케줄 표를 본다는 이유로 사람을 밀치거나 비키라는 신체적 신호를 보내는 그 아이를 싫어했다. 나는 그 아이가 못 배워서 그런 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일을 하기 위해 만난 사이지만 고등학교의 연장선처럼 생각하고 인맥 늘리기에 급급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싫어하자 그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은 무한급수처럼 늘어갔다.


아 나는 형편없구나.


조금 더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아이가 지금도 싫다. 몇 가지 내가 싫어했던 특징을 가진 그 아이를 나는 도무지 좋아할 수 없다. 대학교 4년제를 졸업하지 않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자기 자신으로서 잘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좋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형편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학력은 변수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A 브랜드에서 일하면서 느낀 건 진입 장벽이 낮을 때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그 다양성은 상향평준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학교 진학 문제가 아니다. 이건 예의와 가치관의 문제였다. 시간이 지나 그 아이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의 최종학력을 문제 삼았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대학생 때 나는 그 속에서도 이상한 사람을 많이 만났다. 학력이 사람을 설명하는 전부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때 나는 

그 친구의 학력을 문제 삼았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는 게 무엇인지를.



아, 나 형편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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