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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an 03. 2021

영원한 건 없다.

시간의 가역성


영원한 건 없다.


문득 컴퓨터 내장 메모리를 발견했다. 시선을 완전히 빼앗기고 하던 일을 멈췄다. 과거 시점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그때 그 감정, 그때 그 대화, 그때 그 사람, 그때 당시의 ‘나’가 떠오른다. 평소에는 그런 일이 있었나?라고 기억조차 나지 않던 일들이 사진을 보다가 생각이 난다.


짧은 시간 동안 옛날 감상에 젖으면서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게 된다. 지금은 없지만, 한때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 있다. 한때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나를 살게 해 주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시기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행복을 누릴 수 없을 만큼 그 사람이어야만 했던 이유가 그때는 있었다.


모든 것이 변했는데도 마음이 부유하다.


부유해진 마음은 ‘만약에’를 가정하면서 추억을 곱씹게 만든다. 현재의 관점으로도 그때 그 기억은 유의미한 것으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보고 싶다. 그리운 사람이다. 다시 한번 만나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미 멀어져 각자 살고 있는 인생이지만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여전히 친구이지 않을까. 회사에서 만난 사람이지만 밖에서 봤을 때도 좋은 사람이었는데 가끔 안부를 물으며 서로를 기억해도 좋지 않을까. 조금씩 느슨해진 마음은 그때를 과거에 멈추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의 것으로 연장하려 한다.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되돌아 갈 수 없다. 물리적인 시간이 흐른 만큼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변할 수밖에 없다. 옛날에 만나던 사람은 옛날의 방식대로 나를 기억할 거고,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의 마음이나 의지도 시간의 가역성을 저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시간 앞에서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예전에 유의미했던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이더라도, 지금 그 사람이 그만큼 유의미한 것은 아니다. 매일을 나로 살아가기 때문에 나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난 만큼 나도 변해왔다. 감히 시간의 공백을 채울 수 없다.


기억은 조작된다.


그 시절의 사람이 지금은 내 곁에 있지 못하는 ,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안타깝게도, 기억은 객관적이지 않다. 인간은 자신이 편리한 대로 기억을 재구성하며 조작하기 마련이다. 똑같은 일에 대해 사람들이 입장이 다른 건 강조하고 싶은 것과 축소시키고 싶은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억에 젖어 옛날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지금 자기 입맛에 맞추어 적절히 재편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그 사실에 대한 인간의 해석은 끊임없이 변한다. ‘사실’ 은 내가 생각한 만큼 좋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한 만큼 최악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시점으로 과거의 기억을 평가하는 건 왜곡의 기억을 늘리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가치로 독립된 채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의미를 잃어버리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공허한 것은 아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고를 반복하는 어느 시점에 덧없다고 절망할 이유도 없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기억을 평가하고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그땐 그것대로 의미가 있었고, 지금은 지금대로 의미 있는 게 다를 뿐이다. 지금 시점에서 의미 없는 그것들은 사실 지금의 어떤 가치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때 그 시절 어떤 것을 강제로 소환시켜 지금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을 버릴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시간 앞에서 무력하게 변하지만, 변하기 때문에 허무하거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다. 서로 다른 가치로 평행할 뿐이다.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개별적인 가치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가끔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 두렵다. 의미는 희미해지고 어쩌면 퇴색될지도 모르는데 내가 너무 초라해지는 건 아닐까 의심한다. 철들지 않은 아이처럼 지나치게 지금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 물어본다.


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을 떠올린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는 게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순리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여 고민하는 건 괴로울 뿐이다. 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 이기 때문에 허무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소중한 것이라 믿는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으면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때 추억 보정하지 말고, 영원하지 않을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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