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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Dec 30. 2020

“담배 피울 것 같아서요.”

담배 피울 것 같은 여자가 어떤 여자예요?

담배 피울 것 같은 여자처럼 보여요.


담배 피울 것 같은 여자로 살아 왔다.

담배를 피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선천적인 비염이나, 구시대적인 엄마 때문만은 아니었다. 담배는 기호식품이고, 나는 싫어한다. ‘담배를 피우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데 정말일까?’라는 헛되고 무의미한 생각을 품기도 했지만, 실제 피우고 싶었던 욕망은 없었다.      

나는 담배를 싫어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한다. 담배 피울 것 같은 여자라고.  



담배 피우잖아, 그치?


“A씨, 저희 때문에 담배 못 피우신 거 아니죠? 피워도 돼요.”     


점심을 먹고 난 후, 남자 동료 C가 나에게 말했다. 남자 2명과 나 1명 식사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나는 그의 의중이 이해되지 않아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물어 보았고, 그는 약간 걱정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저희 때문에 안 피우고 들어가는 것 같아서요.” 내가 당연히 담배를 피울 거라 생각했던 그는 ‘흡연자라는 걸 알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질문했던 것이다. 



남자 동료 C의 의도는 배려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 나는 그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다. C를 제외하고도, 담배 피울 것 같다고 본 사람은 많았다. “A씨 꼴초 같아 보여요.” 라는 격한 농담도 들었다. “글쎄. 넌 굳이 말하자면 담배 피울 것 같아.”라는 무던한 말도 “정말 한번도 담배를 피운 적 없어?” 진의를 검증하고자 하는 말까지 다양하게 들었다.



담배 피울 것 같은 여자가 도대체 뭐야?

그리고 담배 피우면,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이죠.


무슨 상관이죠?


내가 개인적으로 만나는 친구들 중에는 흡연자가 없다. 흡연자 남자친구를 사귄 적은 있었지만, 친구들 중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리고 그들은 나처럼 담배를 한번도 피운 적 없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래서 나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의 의견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 않지만, 담배 피우는 걸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우리사회에서 가치중립적으로 해석되지 않고, 그것만으로 편견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담배’는 기호식품인데, 저속적인 행동, 비도덕적인 행동 등과 연관되어 지탄의 대상이 된다.



세상은 여전히 20세기 사고방식에 멈춰있다.


나는 여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 도덕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요즘 우리 학교에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Y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이라 남자들이 피우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여고라서 더욱 큰 문제다.” 도덕선생님은 여자였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의 이야기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있는지 모르겠다. 70년대 태어나 세상을 보고 겪은 도덕선생님이 지금도 도처에 깔려있다. 



이로 인해 ‘담배 피우는 것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는 여자가 남자에 비해 비율상 많다. 예전에 만났던 D는 자신의 여자형제가 담배피우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다가, 나중에야 알려 줬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상관없을 이야기지만, 그때 D는 ‘내가 D의 여자형제들에게 편견을 가질까봐.’라고 말해주었다. 담배가, 담배 그 이상의 것을 함축한다고 사람들은 믿는 것 같다.



기호식품 그 자체는 문제 없어요.


다시 말한다. 담배는 기호 식품이다. 그리고 나는 싫어한다. 아마 생명을 다할 때까지 싫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담배를 싫어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담배를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성인이 정해진 공간에서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유이다.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하지만 기호식품을 피운다는 이유로 편견과 괜한 시선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담배 안 피우는 나도 억울한데, 때로 불필요한 설명까지 해야 하는 사람들은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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