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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May 14. 2021

'친구'가 '지인'이 되는 순간.

자기얘기만 하는 이유


사람은 변하지 않는데, 타인에을 대한 방식도 마찬가지.


고장난 핸드폰 두 개를 가지고 있다. 사용가치로써 전혀 쓸모없지만 개인정보 문제가 일어난다고 해서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고장난 핸드폰 속에도 카카오톡과 문자 메시지들이 있다. 지금 사용하는 스마트폰 카카오톡 친구들 목록을 비교할 때, 여전히 내 인맥은 변함없음을 알 수 있다. 망가진 핸드폰 속 카카오톡 대화들은 놀랍게도 지금과 큰 차이가 없었다. 



과거에 자기 얘기만 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얘기만 하고 있고, 상대방에 대해 질문하거나 의례적인 표현 따위도 전혀 없었다. 마찬가지로 대화 주제를 자기뿐만 아니라 상대방까지 확장시키는 사람들은 여전히 쌍방향적 의사소통을 지향하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건 몇 가지 되지 않지만 내가 사람에 대해 확신하는 진리였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는 심심하고 상투적인 주제에 집중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사람은 듣기보다 말하고 싶어한다.


‘모든 사람은 듣기보다 말하고 싶어 한다.’ 나는 예외 없이, 그렇다고 믿는다. 

사람은 자기가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기가 말하는 것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을 기대하지만, 남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갖고 그것을 전면적인 대화 배경으로 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의 중심은 자기 자신에 있고, 자기 관점을 중점으로 하여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귀는 두 개이고 입은 한 개라지만, 귀는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입은 언제나 선명하게 보인다. 생각건대, 자기 표출에 대한 인간의 강한 본능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일방적인 대화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피곤하다.


그러나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강한 본능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자기 얘기만 하지는 않는다. 타인이 사는 세계나 관심사에 대해 질문한다. 적어도 의례적이거나 형식적인 지문이 오고 가기 마련이다. 즉 보통의 인간적 감수성과 예의를 갖추었다면,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쏟아내지 않는다. 바꿔 말해,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쏟아내며 상대방을 리액션 기계 취급하거나, 동등한 위치로 바라보지 않는 경우도 분명 있다. 



안타까운 건, 공적인 관계에서 갑-을이 아니더라도, 대화가 일방적인 경우가 있다. 물론, 그것을 대화라고 명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사적 관계에서 자기 얘기만 하는 게 보다 이기적이다. 개인적인 관계에서 타인에게 고정된 역할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일방적으로 듣는 것에 집중하고 싶지는 않다. 정신과 의사 양창순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저자) 은 진료비가 비싸다는 환자에게 “환자분 이야기를 이렇게 오랫동안 들어준 사람이 있었어요?” 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듣는 것만 하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소통 없는 대화에 대한 실망
 친구로서 좋아했던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수험 준비로 인해 바쁘던 친구였다. 자신의 안부를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자기 소식만 전달했고, 그간 나는 어땠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너는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인사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친구에 대해 질문했고,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친구는 주어진 대답만 할 뿐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Q&A 시간도 아니고, 자기 얘기만 하는 친구에게 할 말이 없어졌다. 물론 수험 준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을 친구가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에 사용하던 고장난 핸드폰 속에도 여전히 자기 얘기만 쏟아내던 친구의 메시지들이 보였다.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나 알고 지낸 시간들도 어쩔 수 없는 실망감이 밀려 왔다. 친구가 지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무의식적인 일방적 대화가 더 나쁘다.


일방적인 대화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건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나는 무의식적인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나 중요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예의까지 저버릴 정도로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 자기 얘기를 하고 싶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지 리액션 기계 취급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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