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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 Sep 16. 2023

강아지가 아픈데, 저도 우울증입니다

6. 강아지가 호강한다는 말에.

나는 분명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강아지가 호강하면 안 되는 것인가!'
탄식이 흘러나왔다.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했던가, 그저 녀석과 소소한 행복을 바란다.

차라리 사람을 돌보는 것이라면 이렇게 힘들지 않을 텐데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다른 가족이나 친구에게 돌봄을 함께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수월할 텐데 강아지를 돌보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부터 난관에 처한다. 그저 나이 들고 아픈 강아지는 집에 가만히 두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아지에게 뭐 그리 많은 시간과 돌봄이 필요한지 의구심부터 갖는다. 직접 키워보지(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글에서 나눴듯 사람은 '자기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뛰어넘어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 나의 자조적인 결론이었다.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데 안 좋은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파고드는 생각이 있다. 동물들에 대해 조금은 더 인도적이고 평화로운 나라에서 산다면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며칠 전 여느 날처럼 녀석을 펫모차에 태워 산책 중이었다. 산책 나가는 것이 삶의 이유처럼 느껴질 만큼 하루종일 문 앞에서 나가길 바라는 녀석이다. 그리고 나도 이때가 돼서야 바깥바람을 쐬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서 이 산책 시간만큼은 되도록 쉼과 기쁨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인데, 어떤 아주머니 두 분이 우릴 보고 멀리서 호호호 웃으며 다가오는 것부터가 별로였다.


"강아지가 호강이네!"(여러 번 반복)


이런 말을 처음 듣는 것이 아니어서 아예 못 들은 척 쳐다보지 않으려 하는데  나는 분명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강아지가 호강하면 안 되는 것인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주머니의 말이 불쾌한 이유는 강아지가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이런 일에 지치고 너덜너덜해져서 흑화 되었다. 그들의 무례함에 분노를 퍼붓는다.(저주인가?)


 "그래, 당신이 나이가 더 들어 휠체어에 의지해야 산책을 나갈 수 있을 때,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유심히 쳐다봐주기를, '할머니가 호강이네'라는 말은 아니더라도 그저 관심의 대상이길!"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터덕터덕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일화를 떠올렸다. 유럽에 거주하는 한국인인 저자가 사정상 강아지 산책을 거르게 되자 한 이웃이 찾아와 '오늘은 강아지 산책을 안 한 것 같은데 무슨 문제가 있냐'라고 묻는다. 이런 곳에 살면 오히려 산책 잘 시킨다고 칭찬해주지 않을까 웃음이 났다. 어쨌든 아프고 나이 든 강아지와 산책하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자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너무나 불쾌하고 기운 빠지는 일이다.


그래도 이렇게 웃고 감탄하며(?) 지나가는 것은 나은 편이다. ‘이 정도는 뭐, 그런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에 흔들리는 내가 문제지’하고 화살을 나에게 돌린다. 근데 가라앉은 마음을 끌어올리고 힘을 내는 것에는 분명 에너지가 든다. 이런 일이 없으면 더 좋은 것이다.


아무튼 이런 날은 길게 산책할 마음을 접고 빨리 귀가하게 된다. 그리고 축 쳐진 마음으로 ‘집에나 있을 걸’ 또는 ‘사람이 드문 시간에 나갈 걸’하고 자책한다.(햇볕을 쐬어주고 싶어 나간 것인데!) 이미 내 기분을 파악한 녀석은 덩달아 우울하다. 얼른 녀석이 좋아하는 과일을 주고 조금은 선선한 밤에 다시 산책을 나가기로 결심한다.


냉장고에서 배를 꺼내 깎자 얼른 달라고 보채는 녀석에게 말한다. “그래, 우리 그런 말이나 시선에 우리의 행복할 시간을 도둑 맡지 말자. 그들은 지금 아까 그들이 한 말을 생각조차 않을 테니까.” 껍질을 깎아내며 배를 유심히 만져본다. 배처럼 단단한 마음을 갖고 싶어서.


녀석과 함께 선풍기 앞에서 시원한 배를 나눠먹으니 조금은 속이 시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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