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하며 생각한 것 10
2009년 일월 3일. 토요일. 그해 첫 1일로부터 이어진 징검돌 휴일 오후. 세종로 네거리 KT 광화문지사 13층 옛 방송통신위원회 기자실. 괴괴했습니다. 기자는커녕 방통위 직원도 보이지 않았죠.
방통위 당직자가 문 열어 준 뒤에야 기자실 내 자리에 닿았습니다. 2006년 십일월 6일로부터 2008년 십이월 31일까지 이 년 이 개월쯤 취재하며 기사 쓴 곳. 주섬주섬. 짐뿐만 아니라 이 년 이 개월을··· 아니, 기자로 산 십삼 년 팔 개월을 쓸어 담는 성싶었죠.
마흔 마지막 날이던 2008년 십이월 31일. 앞만 보고 달린 나는 갑작스레 뒷덜미를 낚아채인 듯했습니다. 인사 방 내걸리기 삼십 분쯤 전에야 출입처를 잃고 ‘내근 보도자료 대서방’인 ‘온라인 속보팀’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걸 알았죠. 인사 폭압을 뒤집어쓰며 시작된 내 마흔하나와 마흔일곱 사이는 맵고 셨습니다. ‘국제팀’과 ‘논설위원실’과 ‘출판팀’으로 잇따라 내몰리며 취재 현장과 붓을 빼앗겼죠.
얻은 건··· 없습니다. 곰곰 거듭 짚어 봤지만 눈에 띈 건 ‘그자의 열등감’과 ‘그자의 열등감이 빚은 괴롭힘’뿐.
그자. 돈 될 만한 곳만 취재한 자. 읽을거리 없는 기사를 써 달라는 대로 써 준 자. 주말 공짜 골프에 환장한 자. 그 짓 준비하느라 편집국에서 우산 휘두르며 예사로 허리 돌린 자. 내부 정치 하느라 눈에 불 켠 자. 후배 여럿을 제 뒤로 줄 세운 자.
뿐인가요. 줄 따라 시키는 대로 움직인 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 생각조차 없는 성싶은 자.
내 마음에 새긴 건 오로지 ‘흔들리지 말자’였습니다. 돈 될 만한 곳만 취재하는 자 욕심에 맞춰 웃어 줄 순 없으니까. 더러워서. 읽을거리 없는 기사를 쓸 수도 없고. 골프는 여태 해 볼 마음 없습니다. 더러워서. 그자 뒤로 줄 서 움직이거나 아무 말 안 하고 생각조차 없는 삶을 살 순 없으니까.
왈강왈강. 설거지하며 나는 거듭 다집니다. ‘흔들리지··· 말자.’ 왈강왈강. “흔들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