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이 나를 자리로 부르더니 한 주간지 속 소니뮤직 클래식 묶음 시디(CD) 광고를 내보였습니다. 그걸 얼마에 살 수 있는지 소니뮤직코리아 쪽에 알아보라더군요. 말이야 그랬다지만 사실은 한 묶음 그냥 가져오라는 뜻. 부장은 판촉용 가전제품이나 새로 나온 컴퓨터와 프린터 따위를 “땡(당)겨” 집에 두고 쓰는 걸 좋아하는 ━ 자랑하고, 그걸 또 ‘매체와 기자의 힘’으로 여기는 ━ 이로 알려져 있었죠.
스물여덟 살 먹은 2년 차 기자였던 나는 며칠 뒤 부장에게 “십오만 원에 사실 수 있답니다”라고 알렸어요. 소니뮤직코리아 쪽에 “우리 부장이 얼마에 살 수 있는지 궁금해 한다”고, 그가 알아보라던 바대로 알아본 결과였죠. 소비자 판매가에서 얼마간 깎인 ‘15만 원에 살 수 있음’을 부장에게 전한 겁니다. 부장은 답답하고 못마땅한 얼굴로 내게 말했어요. “됐다, 됐어!”
그날 부장은 내가 출고한 기사에서 ‘을’을 쓸 자리에 ‘를’을 쓴 잘못 하나를 찾아낸 뒤 “‘를’과 ‘을’도 구분 못하는 글을 쓰냐”고 핀잔했죠. 나를 자기 자리 옆으로 불러 세워 둔 채. ‘을’을 쓸 자리에 ‘를’을 쓴 잘못 하나만 있었기에 망정이지, 한두 개 더 나왔다면··· 좀 끔찍했을 듯합니다. 부장은 서너 해 뒤 다른 신문사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내내 나를 자기 입길에 올렸거든요. 괴로웠습니다. 그를 견디다 못한 나머지 윗도리 안주머니에 미리 써 둔 사표를 넣고 다녔을 정도로.
그를 견딘 게 힘이 됐을까. 서른과 마흔 살 사이 ‘달리 어찌할 수 없을 지뢰 같은 부장’ 또는 ‘언저리 몇몇’에 맞닥뜨렸음에도 취재하고 생각하는 깊이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글에 살도 조금씩 붙었고.
한두 걸음만 물러나 들여다봐도 모두 똥 묻고 겨 묻은 게 뚜렷했으니 그 꼴로 내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똥 묻은 기사를 독자에게 내밀어선 곤란하니까. 겨 묻은 기사를 믿어 줄 시민 없으니까.
똥, 겨, 더 이상 묻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올곧게 보도하는 짜임새로 천년만년 빛날 신문. 길이 빛날 기자. 그러나··· 잘 아시겠지만··· 신문은 여태 냄새나고 더럽습니다. 올곧은 피땀 적잖았지만 아직 똥과 겨를 돌이켜 보지 않는 기자로 가득한 신문. 어지간해선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망해야 할밖에 달리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