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과 한가위

설거지하며 생각한 것 8

by 글 짓는 은용이

까치설 짚어 가며 “우리 설날” 노래한 건 세뱃돈 때문이었죠. 설빔이 좋기도 했고. 한가위보다 설을 더 좋아라 한 까닭이었습니다.

꾸준히 기쁘고 즐거운 날이었어요.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사는 사촌 여럿과 늘 웃었고. 웃다 흐른 지난날 곰곰 돌아보니 나는 참 무던히도 설날 어머니 움직임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서른 살 되도록. 첫째 큰어머니와 둘째 큰어머니 움직임도 바라보지 않았고. 서른 넘어서도 우물쭈물. 산더미 같은 설거지거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음에도 팔 걷고 나서지 않았죠.

차례 설거지 겨우 끝낸 듯하더니 점심상 차려 내고. 손님상은 또 어떻습니까. 끊임없죠.

“이번 설엔 뵈러 가기 어렵겠어요. 길 막히지 않는 다른 날 갈게요.”

틈 열어 벌리는 데 십 년쯤 걸린 것 같습니다. 차례 지내러 홀로 가거나 벗과만 가며 틈을 냈죠. 꾸지람 들어 가며. 꾸지람 들을 일은 아니라 여겼지만 다소곳이 있으려 애썼어요. 틈을 넓혀야 했으니까.

어머니 아버지. 생각 바꾸셨습니다. 막힌 길에 시달려 파김치 된 손자와 며느리와 아들이 가여워 “오지 마라” 하신 지 오래. 설과 한가위 아닌 날 조용히 만나 맛있는 것 함께 즐기며 웃습니다.

짝(왼쪽)과 벗, 아마도 조나단.

짝과 나도 같이 사는 벗에게 미리 말해 둔 게 있습니다. “나중에 너 혹시 결혼하거든 명절 쇠러 엄마 아빠 집에 올 생각 말아라. 때 더 흘러 엄마 아빠 죽거든 제사 같은 것도 지낼 생각 말아라(<아들아 콘돔 쓰렴>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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