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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짓는 은용이 Apr 19. 2021

한국 자기부상열차의 실패

보도와 논평 사이

 좋은 뜻과 기술 이루려 애쓰는 과학자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되는 대로 시작하고 보는 것’엔 손뼉 쳐 줄 수 없다. 시민 피땀 고스란한 세금을 허투루 쓸 개연성이 크니까.

 한국 시민이 어디 ‘구경거리’쯤에 머물 자기부상열차를 바랐던가. 


 한국 자기부상열차의 실패


 ‘반발식’ 자기부상열차 경험 없다


 By Eun-yong Lee 


 일론 머스크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을 비롯한 세계 주요 초고속 이동 체계 연구진은 진공 튜브 안에서 시속 1000km를 넘어 음속(1200km/h)에 다가서는 게 목표다. 뜻을 이루려면 시속 600km를 넘겨 달릴 ‘초전도 반발식 자기부상열차’를 함께 갖춰야 한다. 힘 좋은 초전도 전자석으로 열차를 10cm쯤 공중에 띄워 달리며 이른바 ‘초고속’을 실현하는 체계인 것.

 한국 과학계에는 그러나 초전도 반발식 자기부상열차 실용화 경험이 없다. 연구를 시작할 때 초전도 반발식을 덮고 상전도 흡인식을 골랐다.

 김창현 한국기계연구원 인공지능기계연구실장은 “2008년쯤 자기부상 방식을 검토한 끝에 ‘흡인식으로 하자’는 결론을 냈다”며 “시속 500에서 600km까지는 흡인식으로 하는 게 괜찮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창영 철도기술연 하이퍼튜브연구팀장도 “(초창기) 기술 평가를 할 때 궁극적으로 속도가 (시속) 550을 넘어가면 초전도가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500까지는 굳이 초전도를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되짚었다. 그는 “2011년 수마(SUMA, 철도기술연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할 때에는 초전도가 없으면 아예 시작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일단 상전도 흡인식으로 시작해 다른 기술을 다 개발하고 난 뒤) 초전도는 나중에 기술이 개발되면, 그것으로 대체하면 우리가 시속 500 이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현실이 이런데 2016년 2월부터 인천국제공항과 용유도 사이 6.1km를 오가는 자기부상열차는 무엇일까.

 시범 노선일 뿐. 초전도체를 쓰지도 않았다. 궤도 아래쪽에 걸어 둔 열차를 상전도 보통 전자석으로 0.8cm쯤 끌어당겨 공중에 띄운 뒤 움직이게 했다. 이런 체계를 ‘흡인식’이라 일컫는다. 중저속 도시형 자기부상열차에 쓰고 시속 550km까지 낼 수 있다지만 한국엔 이를 구현할 만한 체계마저 없다.

 인천공항 시범 노선을 만든 신병천 박사는 “실제 운영 최고 속도는 시속 80km지만, 시험으로 110km까지 달려 보기는 했다”며 “기술은 (노선만 있으면) 시속 200km까지 낼 수 있는데 그 이상은 추진하는 방법이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 박사는 시속 200km로 달려 보려면 “직선 노선으로 최소 1.5km가 필요하다”고 봤는데, 인천국제공항과 용유도 사이엔 1.5km를 직선으로 달릴 만한 곳이 없다. 이는 곧 한국 자기부상열차가 시속 200km로 달려 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2020년 3월 19일 오후 6시 22분 자기부상열차 시범 노선 파라다이스시티역과 합동청사역 사이에서 인천공항 행 1002B와 교차하는 용유역 행 1004A


 한국 자기부상열차 수익 ‘0원’ 


 정부는 지난 2004년 12월 21일 제16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2005년 1월 27일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대형국가연구개발실용화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1번 과제로 자기부상열차를 꼽았다. 2020년께 관련 시장 크기가 국내 45조 원, 해외 250조 원에 이를 테니 2008년까지 4500억 원을 들여 실용화하자는 게 과제 핵심. 2020년까지 해외 시장의 20%를 점유하면 59조 원대 매출이 예상되고, 부품과 시스템 산업에서 1000명이 새로 고용될 것이라는 청사진과 함께였다.

 올해가 2021년, 청사진이 제대로 인화됐을까.

 지난 2006년 12월부터 2013년 8월까지 7년 8개월 동안 도시형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하고 인천공항 시범 노선을 만드는 데 4149억 원이 들어갔다. 열차 성능을 높이느라 2016년까지 3년여 동안 263억 원을 더 들였다.

 이에 앞선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과학기술부가 열차 시제품을 만드는 데 149억 원을 지원했다. 과기부는 이 돈을 포함해 이른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 18년 동안 283억 원을 썼다. 산업자원부도 2003년부터 2008년까지 5년 동안 실용화를 목표로 한 열차 개발에 152억 원을 보탰다. 철도기술연도 2011년 1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SUMA’를 만들고 시험하며 160억 원을 썼다.

 모두 더하면 5007억 원. 한국 과학계가 1989년부터 2020년까지 32년 동안 5007억 원을 쓰고 얻은 건 무엇일까.

 인천공항과 용유도 사이를 오가는 상전도 흡인식 자기부상열차뿐. 지난 2016년 2월부터 5년째 운행하지만 수익은 ‘0원’이다. 무료 시범 노선이기 때문. 정부 대형 실용화 사업 제1 과제로 내세울 때 예상했던 ‘국내 45조 원’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해외에서 59조 원을 벌겠다는 기대와 고용 창출 1000명도 헛꿈. 지난 32년 동안 5007억 원을 들여 가며 품었던 기대치가 모두 ‘0’이 되고 말았다.

 2020년 5월 인천공항공사가 4억5000만 원짜리 용유도 자기부상철도 운영 진단과 대안 마련 용역을 발주했다. 무료 이용 체계여서 수익이 나지 않는 가운데 유지보수에만 해마다 80억 원까지 들어가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고민으로 읽혔다.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 관제실에선 “(열차를 이용해) 무의도나 을왕리 같은 곳 관광하거나 낚시하는 분들이 많고, 조개 잡는 분들도 일부 있다”고 안내했다. 한국 자기부상열차 현주소다. 


▴2004년 12월 21일 열린 제16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자기부상열차 실용화 사업이 집중 지원 과제로 논의됐다.
▴2004년 12월 21일 열린 제16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자기부상열차 실용화 사업이 집중 지원 과제로 논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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